대전 만인산을 다녀왔습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진산군 편에 만인산에 관하여 군의 동쪽 20리에 성봉(정기봉)이 있는데 땅은 두텁고 물은 깊다
봉우리가 우뚝 솟아 연꽃처럼 생겼다 . 태조의 태를 묻었다 라 기록되어 있으며 대동지지 진산군 편에도
동북 30리에 있다 성봉(정기봉)땅은 두텁고 물은 깊으며 고스락이 뾰족뾰족 솟은 봉우리가 기이하고 빼어나다
그 모습이 연꽃같다 라고 써 있습니다
이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대동지지가 만인산의 경관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만인산의 한자 인의 뜻은 높다 깊다의 뜻도 되고 한길(길-사람의 키 정도)의 뜻도 있어서 만길 만장이 되리만치 높다는 뜻입니다
또 만인은 단애 즉 깍아 세운 듯한 낭떠러지의 뜻도 있습니다 결국 만인산의 이름과 옛 문헌이 만인산의 경관과 산세를 잘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만인산 537m 대전 동구 소하동, 충남 금산
만인산 휴게소 바로 옆에 있는 만인산 안내도 입니다
저는 등산로의 출발점으로 만인산 휴게소 뒷편으로 잡았습니다
뒷편에는 임도길이 나 있는데 사진처럼 등산로로 올라갈수 있는 샛길이 있습니다
만인산 정상방향으로 걷기 시작한지 10분쯤되자 이정표가 나타났습니다
만인산 정상까지 1.1km 네요.. 비교적 쉬운 산입니다
만인산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
만인산 정상에서 보는 경치 입니다
만인산 정상에서 바라본 정기봉...
문헌에는 정기봉 대신 성봉으로 써 있습니다
만인산정상에서 뚜렷히 보이는 서대산...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경치가 인근산중에서 좋은편입니다
만인산 537m 정상에 왔다는 기념으로...
만인루 입니다
규모가 큽니다... 휴식장소로 삼기에 좋습니다
만인산 하산길에 있는 광장입니다 마실수 있는 수돗물이 있습니다
만인산에서 정기봉으로 가는도중에 본 태조대왕태실 입니다
이 태조대왕태실은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의 태실로써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일제시대때 전국에 흩어져 있는 많은 태실을 관리하는데 비용이 많이들고 어렵다는 이유로 1928년 조선조 왕실의
전국 태실의 태함을 서울 창덕궁으로 옮겨 버렸습니다 여기 태조의 태실 태함도 서울로 가져가며 비 돌거북 태함 보관시설 등
석물을 땅에 묻었습니다
최근 태실이 있었던 땅의 주인이 그것을 알고 군 담당 직원에게 우리 산에 석물이 묻혀 있는데 우리 어머니 산소가 있는
곳이어서 어머니가 꿈에 나타나 가슴이 눌려 답답하니 치우라고 하신다며 치워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합니다
그 공무원은 내용도 모르고 치워도 좋다고 말했다는 겁니다 산주는 얼싸 좋다고 그 석물을 서울 골동품 상인에게 얼마의
돈을 받고 팔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 석물을 옮긴 포크레인 업자가 이상하게 생각하고 자기도
죄에 연루될까 겁이나 추부면에 그 사실을 알려서 서울로 올라갈 뻔했던 태조 태실의 유물이 만인산에 그대로 남아있게
되었다 합니다 (구전으로 확인이 되지 않았음)
이 일이 있고 난뒤 부랴부랴 석물을 찾아 많은 돈을 들여 현재의 고갯마루에 복원해 놓은 것입니다 복원된 태실은 큰 돌거북 등
위에 태조대왕 태실이라 쓴 오석의 큰 비가 있고 그 뒤 돌 울타리안에 태를 보관했던 팔각원당형 석물이 있습니다
당초의 제자리에 복원해 놓으려 했으나 그 땅 주인이 땅을 내주지 않았다 합니다
(- 한밭 그 언저리의 산들 책에서 인용-)
태조대왕태실
태조대왕태실에서 바라본 경치입니다
이 태실이 만인산으로 옮겨진 실화 비슷한 이야기가 있는데
이성계의 아버지 이자춘이가 젊은시절 명당을 얻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쓰고 있을무렵
어느날 스님과 선비 두 사람이 길을 가며 저 자리는 어떻고 이 산은 어떻다며 지리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우연히 그 들 뒤를 따라 가며 지리 이야기를 들은 이자춘의 식객은 앞에 두 사람이 비범한 인물이 아니며 지리에 높은 식견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자춘이 명당을 얻기 위해 애를 태우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그 식객은 단숨에
달려가서 자기 주인에게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이자춘이 바로 �아 나와 그 두 나그네를 집에 모셔다 놓고 연일 융숭한
대접을 했습니다
알고보니 그 두 사람은 당대 최고의 지리 전문가들로 스님은 고승 나옹 이었고
선비는 뒤에 개국공신이 된 유학자 정도전 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이자춘의 정성에 감복하여 명당 한 자리를 잡아주고 이장의 절차까지 일러주며 이자춘에게 은밀하게 당부를 합니다
이 자리에 당신의 아버지(이 춘, 뒤에 도조로 추존) 유골을 모시고 얼마가 지나면 왕이 될 아들을 낳을 것이다 아들을 낳으면
저 연못 가운데에 태를 묻되 그 아이가 임금이 될 때까지 부인을 포함해서 아무도 모르게 하고 임금이 된 뒤 그 태를 옮기도록
하라고 한 것입니다 그 태를 묻었던 연못이 영흥의 용연입니다
태조는 임금이 된뒤 신하 가운데 지리에 밝은 권중화를 시켜 자기의 태 묻을 자리를 찾게 했습니다
권중화는 서울에서부터 남으로 내려오며 명당을 찾습니다 그때 잡은 명당이 만인산의 태실자리 입니다
권중화가 태실 자리를 찾으러 다니다 얻은 중요한 부산물이 있는데 바로 조선조의 창건 초기 도읍(왕도)터로 잡을뻔한
계룡산 일대 신도안 입니다
(- 한밭 그 언저리의 산들 책에서 인용-)
태조태실 바로 위에 있는 출렁다리 입니다
건너보니 출렁이는게 재미있습니다 ^^
정기봉 정상에서 바라본 서대산 입니다
정기봉 정상 580m... 기념으로 ^^
정기봉은 사실 성봉이라 불려야 합니다
수백년 전부터 내려온 고전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대동지지에 만인산의 정기봉을 성봉으로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고
만인산 란에 성봉이 있는데 봉우리가 우뚝 솟아 연꽃처럼 생겼다 로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성봉이 특기되어 있는 까닭은 만인산의 주봉이 537m인데 비해 성봉(정기봉)은 580m로 40여m 높을뿐 아니라
만인산 주봉일대에는 뚜렷한 봉우리가 없이 거의 평정봉(봉우리가 길게 평평한것)인데 성봉은 그 머리가 둥글게 그야말로
연꽃처럼 뛰어나게 높이 솟아 있습니다
그 때문에 서대산 대둔산 진악산 계룡산 식장산 보문산 등지에서 이 성봉(정기봉)이 눈에 띄게 우뚝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만인산 주봉은 낮은데다 평정봉이어서 먼 데서 찾기가 어렵습니다
한마디로 연꽃처럼 뚜렷하게 보이는 봉우리는 만인산 일대에서 성봉(정기봉)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성봉에 엉뚱한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푸른학습원에서 만인산 일대를 개발하고 개념도 안내도를 만들며 근동의 노인이 정기봉이라 했다며
모든 안내판과 기록에 성봉을 유래도 뜻도 없는 정기봉으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푸른학습원에서는 먼저 문헌부터 살폈어야 했습니다 여즈음에야 문헌들을 보았는지 성봉에 대한 연꽃 설명을 엉뚱한 만인산
주봉쪽에 세워놓았고 파묘자리인듯 싶은 만인산 주봉과 성봉 고스락의 패인 자리를 봉화대 흔적이라 안내판에 써 놓았습니다
(- 한밭 그 언저리의 산들 책에서 인용-)
만인산 푸른학습원 입니다 하산길로 잡은 곳이죠
원점회귀를 위해 하산하는도중 본 연못위의 무지개
이상 만인산 대전시민들이 무리없이 찾을만한 좋은 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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