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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계족산의 고인돌 성혈

by [대전]풀때기 2008. 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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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족산 정상에 고인돌과 관련된 것이 있다는 예기를 듣고 조사차 계족산을 방문했습니다

 

역시나 지금까지 몰랐던 고인돌의 흔적이 있더군요

 

 

 

계족산 정상

 

계족산 정상석 우측을 보면 평상시에는 일반적인 바위덩어리로 생각하고 지나쳤는데

 

바위덩어리를 보면 고인돌의 특징인 성혈이 세겨져 있습니다

 

 

 

 

움푹 들어간 구멍이 성혈

 

 

 

 

 

 

 

 

 

 

성혈자국

 

 

 

 

 

 

 

 

 

그 옛날 윈시인들이 새긴 성혈..

 

 

 

 

 

 

 

 

 

 

 

노란색 동그라미로 표시해 봤습니다

 

 

 

 

 

 

 

 

 

 

성혈이 세겨진 바위위치

 

우측 무덤이 눈에 거슬리는군요

 

이 무덤에 대해 알아봤는데 개발제한구역 및 공원으로 지정되기 전에 안장된 파평윤씨 종중의 무덤으로

 

대덕구청에서 파평윤씨 종중에 이장을 요구하였으나 파평윤씨 종중에서 이장을 반대해

 

법령제정 이전에 이장된 묘라 법적으로 어찌할 도리가 없어 방치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하산하면서 내려오면 이곳에 성혈이 또 있습니다

 

빨간색 동그라미한 바위

 

 

 

 

 

 

 

 

빨간색 동그라미 한 부분이 성혈

 

 

 

 

 

 

 

 

 

 

 

 

 

 

 

 

 

 

하산후 바라본 계족산

 

 

 

 

  성혈(性穴)의 개념

 

성혈이란 바위 표면에 홈처럼 파여진 구멍을 말한다. 크기는 직경 5∼10cm의 정도에 깊이 3∼5cm 내외가 대부분이나 15∼20cm에 달하는 것도 있다. 보통 거석 신앙의 대표로 손꼽히는 고인돌이나 선돌의 표면에 파여져 있다. 실상 고인돌에 새겨진 것 중에 가장 많은 것이 성혈이다. 한반도 고인돌에 새겨진 성혈은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민간에서는 성혈이 파여져 있는 바위를 '알바위', '알터', '알구멍', '바위구멍'이라고도 한다.

성혈의 의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다른 해석들이 있다. S. Muller는 성혈이 불씨를 만드는 데서 생긴 것으로 보았으며, G. Schwates는 천둥을 경외의 표현으로, J. Maringer는 태양 숭배 사상이 표현 된 것으로 보았다.

황용운은 위의 해석과는 다르게 덴마크나 시베리아에서 발견되는 풍요와 생산을 상징하는 'Cup-mark'와 같은 뜻을 지닌 원시종교의 유적으로 해석하였다. 또한 'Cup-mark'는 고인돌 축조 시기가 지난 후 다음 시기에 만들어진 종교적인 것으로 추정하였다. 그러나 덴마크와 시베리아의 'Cup-mark'와의 연관관계를 밝히지는 못했다. 이융조는 성혈을 피장자(被葬子)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았다. 성혈의 크기는 묻힌 사람의 등급과 서열 관계를 나타낸 것이며, 구멍의 수는 피장자의 가족 구성원 수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최몽룡은 「原始採石 問題(원시채석 문제)에 대한 小考(소고)」란 논문에서 황용운과 마찬가지로 시베리아에 그 기원을 두고 성혈을 풍요와 생산을 상징하는 'Cup-mark'로 규정하였다. 또한 성혈을 시베리아에서 신석기시대 말기에 나타났다가 청동기시대에 완전히 발달하는 암각화와 관련지어 상한 연대를 B. C 7∼8C로 보았다. 이처럼 성혈에 대한 해석은 매우 분분하여 종교적 행위, 장례 의식의 표현 등등 여러 가지 각도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외에도 후대에 만들어 진 것으로 추정되는 성혈이 끊임없이 발견되어 의미 해석 에 여러 가지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전남 순천 창촌리 고인돌에 새겨진 것은 논에 날아든 새를 쫓으면서 심심해서 파놓은 것으로, 감은사지 석탑의 기단면에도 새겨진 것은 불교신앙과 관련되어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향후 계족산을 올라가시는분들은 성혈을 한번쯤 구경해 보시길 바랍니다 ^^

 

 

 

 계족산의 유래

 

 

▷ 이름이 왜 계족산인가?

 

왜 하필 계족, 즉 "닭의 다리"라는 그다지 점잖치 않아보이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이야기들도 많지만 가장 유력한 것이 풍수지리에서 산의 형세가 닭의 다리를 닮아 이런 이름이 되었다는 것이다. "세종실록 지리지"의 회덕현조와 "고려사"에도 계족산이라는 표현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오래전부터 계족산이라는 지명이 쓰인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오늘날의 계족산이라는 지명과 상관이 봉황산이라는 이름으로도 두루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 가뭄이 들면 그들은 왜 산을 오르는가?

 

 

계족산의 정상은 천하의 명당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그래서 이곳에 조상의 묘를 쓰면 자손들은 대대로 복을 받지만 회덕지역은 가뭄이 든다는 속설이 있다. 그래서 가뭄이 들면 이 지역 사람들은 정상에 있는 묘를 파고 그 곳에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 예로부터 신성한 산으로 불린 계족산

 

 

"세종실록지리지" 회덕현조에는 계족산에 대해 이렇게 설명을 하고 있다. "향인이 이르기를 하늘이 가물 때 이 산이 울면 반드시 비가 내린다"라고 기록이 되어 있다. 일찍부터 계족산이 회덕고을의 백성들로부터 신성한 공간으로 숭배를 받아왔음을 알수 있다. 그리고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계족산의 짐승을 건드리지 않는 것을 불문율로 지켰다고 한다. 이곳에는 노루나 토끼 등 짐승이 많았으나 수렵꾼들 조차 계족산의 짐승을 잡는 것을 두려워 했다는 것이다. 명신의 짐승을 잡는 것을 죄악시 한 탓이다.

 

 

 

사진 소유자: 풀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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