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논산 호암산(虎岩山) 185M 노성산(魯城山) 348M 봉우재산 205M
산행코스: 파평윤씨 종학당 이정표 150M 뒤 공터 -> 호암산 -> 송촌 갈림길 -> 187M봉 -> 도로 -> 256M봉
-> 노성산(노성산성) -> 금강대도 -> 임도 -> 봉우재산 -> 송당저수지 -> 파평윤씨 종학당 이정표 150M 뒤 공터
산행거리: ? km 내외
산행시간: 3시간 28분 (PM 01:15 -> PM 04:43)
원점회귀 도로 도보시간: 33분 (PM 04:43 -> PM 05:16)
산행지 찾아가는 주소: 충남 논산시 노성면 죽림리 1-2 맞은편
산행속도: 빠른걸음
산행난이도: 중 (전체적으로 산행이 쉬우나 일부 구간 길이 좋지 않음)
산행날씨: 맑음,흐림,비
소요된 음료: 생수 1000ml
참가자: 풀때기 나홀로~
산행일정
종학당 이정표 150M 뒤 PM 01:15
호암산 PM 01:33
송촌 갈림길 PM 01:47
187M봉 PM 02:14
도로 PM 02:50
256M봉 PM 03:24
노성산(노성산성) PM 03:49
금강대도 PM 04:08
임도 PM 04:19
봉우재산 PM 04:28
하산완료 PM 04:43
송당저수지 PM 04:54
종학당 이정표 150M 뒤 PM 05:16
충남 논산 호암산
자료없음
충남 논산 노성산
노성면은 1656년(효종 7) 때부터 노성현(魯城縣)으로 불렸는데, 노성산은 이 지명에서 연유한 것으로 추측된다.
논산시 시가지로부터 북쪽에 위치해 있는 산으로, 노성면 면소재지로부터 북서쪽에 위치해 있다. 해발 348m의 노성산 산정에는 백제시대에 축조된 삼태기 모양으로 둘러쌓은 테뫼식 석축 산성인 노성산성이 있으며, 연산면 황산성과 함께 백제와 신라가 대치했던 최후의 방어선에 위치해 있다. 현재 산성의 성벽은 대부분 붕괴되었지만 몇몇 군데는 비교적 원형에 가깝게 남아 있다.
성곽과 관련된 부대시설로는 동문과 서문 터를 비롯하여 8개소의 건물지, 4개소의 우물터, 그리고 장대지가 있다. 노성산의 동쪽으로는 남~북 방향의 구조곡이 있는데, 이곳 곡저평야에서 논농사와 지형을 이용한 국도 23호선이 지나고 있다.
출처
디지털논산문화대전
충남 논산 봉우재산
자료없음
다녀간 호암산,노성산,봉우재산 지도
(손모양 아이콘을 눌러주세요)
종학당(파평윤씨) 이정표를 150M 지나 공터에 차량주차
산행 시작
PM 01:15
호암산 정상 부근은 2010년 6월 10일 화재로 인해 0.45㏊ 탄 흔적들이 남아있다.
호암산 정상 185M
PM 01:33
호암산 정상에서 바라본 조망
일반인에게 알려지지 않은 무명에 가까운 호암산은 꽤 멋진 조망을 가지고 있다.
이리도 멋진 조망에 지금까지 이곳에 관한 산행기가 없는게 의외스럽다.
항공사진으로 본 현 위치
풀때기 시그널에 산이름과 산높이를 표시해 나뭇가지에 동여매다.
송촌 갈림길
PM 01:47
171M봉과 187M봉 사이의 무덤에서 바라보는 조망이 멋지다.
187M봉 삼각점
PM 02:14
187봉 삼각점부터는 길이 다소 좋지가 않다.
오색딱따구리 발견
PM 02:28
무덤길을 경유해 하산
도로에서 화살표 방향으로 이동
PM 02:50
배추밭 옆길로 올라감
256M봉
PM 03:24
병사저수지 방향 조망
노성산성
노성산(노성산성) 정상 348M
PM 03:49
항공사진으로 본 현 위치
산불감시카메라 옆 나뭇가지에 시그널을 매달다.
하산
노성산성
논산 노성산성에 대한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노산성(魯山城)은 석성인데 둘레가 1,950척이고 높이가 8척이며, 그 안에 우물이 4개 있다.”고 하였고, 뒤이어 “성산봉수(城山烽燧)는 남쪽으로 은진현(恩津縣)의 황화산(皇華山)과 응하고 북쪽으로는 공주의 월성산(月城山)과 응한다.”고 되어 있다. 노성산성은 노산성으로도 불렸으며, 조선시대에는 봉수의 기능도 담당했던 산성임을 알 수 있다.
노성산성은 산 정상부를 중심으로 그 남사면을 에워싸면서 삼태기식으로 축조된 산성이다. 지형은 북벽이 산 정상부를 지나는 반면에 남벽은 산 중복까지 내려와 있어 전체적으로 북고남저(北高南低)형을 이룬다. 성벽은 자연지형을 적절히 활용하면서 장방형으로 다듬은 화강암을 이용하여 바른층쌓기 방식으로 축조하였다. 대부분 편축식(片築式)으로 축조했으나 일부에는 협축식(夾築式)의 흔적도 남아 있다.
성 안에서 가장 낮은 구간을 지나는 남벽은 편축식처럼 남아 있었으나 발굴 조사 결과 원래는 협축식으로 성 안의 토사가 쌓이면서 편축식처럼 남게 된 것이 확인되었다. 성벽의 높이는 대체로 3m를 유지하고 있으나 일부 구간은 7m에 이르는 곳도 있다.
부대시설로는 성문·건물지·우물터·저수시설 등이 있으며, 이와는 별도로 봉수대가 남아 있다. 성문은 동북쪽에 있는 동문지를 비롯하여 서문지와 남문지가 확인되었다. 동문지와 서문지는 지표 조사로 쉽게 확인되었으며, 조사 당시 인위적으로 출입구를 메워 폐쇄한 상태였다.
남문지는 성문 주변의 성벽이 붕괴되면서 성문 출입구를 완전히 메워 지표 조사에서는 전혀 확인되지 않았으나 성벽을 복원하기 위한 제토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남벽의 중간에서 동쪽으로 치우친 곳에 자리하며, 이곳은 평탄지와 경사지가 만나는 지점에 해당된다.
건물지는 성 안 곳곳에 남아 있다. 건물지마다 기와편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기와편은 대체로 통일신라시대 이전에 제작된 것이 다수를 이룬다. 그 밖에 우물터는 남아 있으나, 남벽쪽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저수시설은 지표 조사에서 확인하기 못하였다. 성벽은 현재 대부분 붕괴되어 일부만 남아 있다
노성산성은 조선시대 지리지의 기록으로 볼 때 조선시대 이전에 축성된 것이 분명하다. 그 시축 시기는 명확하지 않으나 축성법과 출토 기와가 백제적인 특징을 띠고 있어 대체로 백제 때로 보고 있다. 논산과 부여의 중간에 위치해 있어 황산벌이나 그 동쪽의 신라 진영에서 사비도성으로 통하는 길목을 방비하기 위해 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백제 부흥운동 기간에 등장하는 이례성(爾禮城)을 노성산성에 비정하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노성 지역이 열야산현(熱也山縣)이 설치되어 있었던 곳이고, 그 현성(縣城)을 노성산성으로 볼 때 노성산성의 둘레가 900m에 이르는 점은 현성치고는 지나치게 규모가 큰 문제점이 있다. 1995년 8월 2일 사적 제393호로 지정되었다.
출처
디지털논산문화대전
금강대도
1874년 이승여(李承如)가 창시한 종교.
이승여는 고려시대 이색(李穡)의 18세 손으로,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 포항리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1898년 서자암(徐慈庵)과 결혼하여 자신은 금강도사(金剛道師)라 하고, 서자암은 연화도사(蓮華道師)라고 하면서 금강산을 중심으로 적극적인 포교의 길에 나섰다.
1910년 계룡산 신도안 백암동으로 옮겨 많은 제자를 얻었으며, 1923년에 현재의 충청남도 연기군 금남면 금천리에 성전을 짓고 교화에 힘쓰다가 1934년에 사망하였다. 이때 수많은 제자들이 군사부일체의 뜻으로 3년간 중복(重服)을 입었다고 하며, 1937년에 장남인 이성직(李成稙)이 도통을 계승하였다.
이성직은 교리 및 예법의 체계화에 주력하였고, 1941년에는 일제의 민족종교 말살정책에 의해 성전이 헐리고 10여 명의 제자가 순교하는 등의 수난을 겪기도 하였다. 1957년 2세 도주가 죽고, 1964년에 3세 도주로 장남인 이일규(李一珪)가 도통을 계승하였다. 3세 도주는 도장의 성역화 및 종단조직의 확대에 주력하여 현재 전국에 1백여 개의 본원·분원 및 회관을 두고 있다.
토암(萬法敎主·金剛三宗大聖師父), 청학(東華敎主·金剛三宗道聖師父), 월란(通天敎主·金剛三宗德聖師父)의 3대를 금강대불(金剛大佛)이라 하고, 그 부인들인 자암(萬法敎主·蓮華三宗大聖師母), 보단(寶丹, 東華敎主·蓮華三宗道聖師母), 향련(香蓮, 通天敎主·蓮華三宗德聖師母)의 3대를 연화대불(蓮華大佛)이라 하여 음양평등의 삼위일체 미륵대불로 신봉하고 있으며, 태극무극현화천존(太極無極玄化天尊)·옥황대천존(玉皇大天尊)·구천개화대교주(九天開化大敎主)라 하여 천상의 삼청경(三淸境:太淸·上淸·玉淸)에 있던 천존이 화신한 것으로 신봉하고 있다.
교리는 천·지·인 삼합의 원리에 순응하며, 인간의 도덕을 수립함에 있어 유·불·선 삼도를 만법귀일(萬法歸一)의 원리로 통합, 실천하여 심(心)·성(性)·신(身) 삼합의 경지를 이룬다는 것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내단(內丹)·외단(外丹)이 합일된 진단(眞丹)을 이루어 차생군자(此生君子)와 내생선불(來生仙佛)의 극락을 향유하게 하고, 인류사회에서는 도덕문명이 개화되는 대동세계(大同世界)를 건설한다는 것이다.
경전으로는 토암이 신도(神道)로 직접 구술한 28권을 통칭 ≪대원경 大圓經≫이라 하며, ≪대정경 大正經≫·≪대방경 大方經≫ 등이 있다. 신도들은 <보고 寶誥>라고 하는 글을 수시로 외는데, 이때 향·초를 피우고 목탁과 바라를 친다.
실천 계율로 금강실행십조(金剛實行十條)·금강삼대보훈(金剛三大寶訓)·금강십계율(金剛十戒律)이 있는데, 내용은 가화(家和)·심신청결·충·효·성경(誠敬)이 핵심이며, 육식을 금하고, 글씨가 씌어 있는 모든 종이를 소중히 여기며, 부정(不淨)을 가리는 등 특이한 계율도 지니고 있다.
도주의 탄일과 제향일을 비롯하여 일 년에 16회의 총회일이 있어 치성을 올리며, 겨울에 성제(誠齊)라고 하는 정기적인 수련과정이 있고, 여름에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수련법회가 열리고 있다. 이미 민족항일기부터 상당한 교세를 보여 독자적인 계통을 형성,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특히 경기·충청·경상도 지방으로는 상당한 교세를 확보하고 있다.
참고문헌
聖蹟編年
大正經
五萬燈臺 1·2輯(金剛大道白雲道友會, 1981·1986)
韓國新宗敎實態調査報告書(韓國宗敎學會, 1985)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1996.1.5, 한국학중앙연구원
삼성대성전 내부
임도
PM 04:19
임도에서 화살표 방향으로 진행
봉우재산 정상 205M
PM 04:28
항공사진으로 본 현 위치
산이름과 높이를 표시해 나뭇가지에 매달다.
하산하는 길이 험하다.
하산완료
PM 04:43
창공마을 아파트 방향으로 진행
창공마을 아파트 앞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도로를 따라 원점회귀
PM 04:54
도로를 따라 원점회귀 도중 순국선열 성재 윤이병 선생의 묘 이정표 발견
윤이병[尹履炳 ]
1885(고종 22)∼1921. 독립운동가ㆍ애국지사.
호는 성재(省齋). 충청남도 논산 출신. 1895년 10월 일제의 민비시해 만행이 자행되자 여러 차례 복수토역소(復讐討逆疏)를 올렸다. 고종의 밀령을 받아 민비시해의 죄상을 조사, 보고하려다가 실패했고, 정부 내의 친일분자를 숙청하려다가 실패하였다.
1903년 5월 청국 동순태(同順泰)의 상표(商票)와 일본 제일은행권(第一銀行券)의 국내 유통을 반대하는 민중운동을 전개하였다. 1905년 11월 일제가 을사조약을 강제체결하여 국권을 박탈하자, 을사조약의 파기와 을사오적의 처형을 주장하는 격문을 전국에 돌렸다.
1906년 향리에 동아개진교육회(東亞開進敎育會)를 창립하고 국권 회복을 위한 교육구국운동에 진력하였다. 1907년 서울에서 동우회(同友會)를 조직, 제2대 회장이 되어 매국단체 일진회(一進會)를 성토하였다.
1907년 7월 일제가 헤이그특사사건을 구실로 고종을 강제양위시키고 일본인 차관통치를 시작하려 하자 동우회의 결사대를 조직, 대한자강회(大韓自强會)와 연합해 격렬한 반대시위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 때 을사오적의 처단을 주장하면서, 이완용(李完用)의 집에 방화를 제의해 실천하는 등 구국운동을 전개하였다. 이 운동으로 인해 3년간 전라남도 지도(智島)에 유배당하였다.
일제가 1910년 8월 한국을 병탄하자, 의병운동을 계승하는 독립운동 단체로서 동지들과 함께 1913년 9월 독립의군부(獨立義軍府)를 조직하였다가, 1914년 4월 일제에 붙잡혔다. 3ㆍ1운동 때에는 서울 적선동에서 독립만세 시위운동에 참가하였다.
3월 상순에 한남주(韓南珠)등과 13도대표의 국민대회(國民大會) 결의를 지지하고 한성정부안 「조선민국수립안」에 의거한 임시정부 수립을 요구하며 선전활동을 하다가 일본경찰에 잡혀 징역 10월형을 언도받았다. 옥중에서 병을 얻어 석방 직후 죽었다. 저서로는 『성재유고』가 있다.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2010, 한국학중앙연구원
차량회수 완료
PM 05:16
대전 근교의 산행지로 호암산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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