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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대전·세종·충청 근교의 산

계룡산 제석사 - 논산 봉황산 산행 <2024년>

by [대전]풀때기 2024.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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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계룡산 제석사 - 논산 봉황산 산행

- 1년에 단 하루 석가탄신일에만 출입이 가능한 사찰 -

 

날짜: 2024년 5월 15일(수/석가탄신일)

 

계룡산 제석사 코스: 구룡콘도 -> 제석사 -> 구룡콘도

논산 봉황산 코스: 봉화사 -> 전망대 -> 봉황산 -> 전망대 -> 봉화사

 

거리: 의미 없음

소요 시간: 의미 없음

 

 

고도차: 

 

*유의사항:

없음.

 

 

제석사 찾아가는 주소: 충남 계룡시 신도안면 암용추로 89 (구룡콘도)

 

속도:

날씨:맑음

 

 

참가자 : 21명 (풀때기 , 달팽이 , 아띠 , 솔리드 , 초록빛 , 가리온 , 봄향기 , 여니 , 단테 , 태풍 , 윤슬 ,

레몽 , 피그 , 세실 , 법운 마향 , 영지 , 장밧드 , 깨소금 , 산울 , 꼬마비)

 

 

 

대전세종 산사랑 산악회 (https://cafe.daum.net/djsjsan)

 

차량지원자: 법운 , 태풍 , 단테

현장 합류: 5명

 

참가비:6,000원

 

점심식사 장소: 

식당 주소: 

식사 메뉴: 

 

 

일정                 

대전 수산물 시장   오전 9시 00분 출발

구룡콘도                오전 9시 40분

제석사                   오전 10시 05분

암용추                   오전 11시 20분

구룡콘도 종료       오후 12시 00분

논산 봉화사           오후 12시 47분

봉황산                   오후 1시 6분

논산 봉화사 종료   오후 1시 19분

탑정호수변공원     오후 1시 43분

논산 대명산           오후 2시 24분 

하산완료                오후 2시 56분

탑정호수변공원     오후 3시간 21분

대전 수산물 시장   오후 4시 26분 해산

 

 

 

 

계룡산 제석사

‘제석사’라는 이름은 1965년 창건 당시 스님이 계룡산 산세가 천황봉으로부터 제자봉으로 연결돼 ‘제석사’로 명명(命名)했다고

전한다. 사찰 주변 모든 것이 신비롭지만 대웅전격인 ‘각왕전(覺王殿)’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직 국가의 안녕과 평화통일, 그리고 국태민안(國泰民安)만 위한 기도도량이다.

 

 

논산 봉황산

산 모양이 봉황과 같이 생겼다 하여 봉황산이라 부른다고 한다. 옛날 이 마을에서 홀아비가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는 아들이 무럭무럭 잘 자라 훌륭한 사람이 되어 주기를 바라며, 아들에게 온갖 정성을 다하였다. 그는 아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고 생의 전부였다. 이런 그를 가리켜 마을 사람들은 “저 사람은 아들을 위해서 태어난 사람이야”라고 말하였다. 아들은 점점 자랄수록 기골이 장대해지고 영특하였으며, 글 읽기에 열심이었다. 아버지에 대한 효심 또한 대단하여 사람들은 ‘개천에서 용이 났다’고 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버지는 마을 사람들의 칭찬을 들을 때마다 즐거워하였다. 어느 날 아버지는 아들을 불러 앉히고 “너도 이제 다 컸으니 이 길로 한양으로 올라가 성공하고 돌아오도록 하여라”라고 말하면서 노자 몇 푼을 주었다. 그래서 아들은 그 길로 한양으로 떠났다. 아들을 한양으로 떠나보낸 아버지는 이때부터 냉수로 목욕재계하고 봉황산에 올라가 아들이 성공하고 돌아올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정성껏 빌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하루도 빠짐없이 봉황산에 올라가 기도를 하였다. 그의 기도가 하늘에 닿았는지 몇 년 후 아들은 한양에서 크게 성공하여 돌아왔다. 아버지는 뛸 듯이 기뻐하였다. 그리고는 ‘봉황산 산신령님, 고맙습니다. 저의 아들을 이처럼 보살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하며 마음 속으로 감사드렸다. 아들은 장가를 들어서 왔는데 따라온 며느리도 효부였다. 어찌나 그에게 잘하는지 이 세상에서 자기처럼 행복한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부간의 금실 또한 좋아서 집안에서 웃음꽃이 그칠 날이 없었다. 아버지는 매일 봉황산을 바라보며 산신령한테 감사의 기도를 하였다. 아들이 출세하고 효부 며느리를 맞이하게 된 것은 오로지 봉황산의 산신령 덕이라고 믿었다. 이때부터 봉황산에 기도를 하면 부부간의 금실이 좋아지고 아들이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이 나왔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봉황산을 찾아와 기도를 하였다고 한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석가탄신일을 맞이하여 계룡산 제석사 사찰탐방과 논산 봉황산-대명산 산행을 하기로 하다.

 

계룡시에 위치한 구룡콘도에 오전 9시 40분 집결.

총 참가인원 21명.

 

대세~ 산.

손으로 산모얌 만들기.

 

기념촬영.

 

제석사를 가기 위해서는 군무대 철문을 지나야 하는데

공식적으로 석가탄신일에만 철문이 열린다. 

 

 

 

 

 

 

 

 

계룡안보생태탐방로 (계룡하늘소리길) 지도.

 

계룡시청에 최소 2주전 사전 신청한 단체에 한해서만

출입이 가능하다.

 

 

 

 

 

 

제석사 방향으로 오르다.

 

 

 

 

 

 

 

 

 

제석사 일주문.

 

 

 

 

일주문 옆으로 제석사 안내석비가 있는데 내용은...

 

제석사 안내석비

네마리의 용은 각자 동서남북을 수호하고 팔각등은 속세의 중생의 마음에 등불이 되니 어찌 자비를 따르지 않으리오

연화는 오랜 세월속에 불교의 상징이었으며 힘찬 호랑이의 모습은 동양의 상징이었다.

산은 산이요 라는 깊은 뜻을 중생은 마음에 등불 밣혀 부처와 함께 안식하여라.

 

을유년 4월 입

 

 

 

 

 

 

제석사에 들어서다.

 

 

 

 

제석사의 대웅전인 각왕전

 

 

 

 

 

 

 

 

 

 

 

 

 

 

중앙 계단을 따라 오르다.

 

 

 

 

 

 

 

 

 

 

 

 

 

 

산신각 주변의 조망.

 

 

 

 

제석사의 바위동굴.

 

제석사 위에는 바위동굴이 하나 있는데 용구추(龍口湫)라고 한다. 

이곳에서 이성계가 계룡산에 도읍을 정하는 것을 허락해 달라고 산신기도를 올리던 장소라고 알려져 있다.

기도를 올리던 이성계는 계룡산은 미래의 정도령의 터이니 물러가라는 산신령의 호통을 듣고 이곳 신도안에 정하려던

수도를 한양으로 가게 되었다고 한다.

 

도선국사와 무학대사가 다녀갔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곳은 국내 제일의 산신기도도량이라고 한다.

 

 

 

 

 

 

 

 

 

 

 

 

 

 

 

 

이른 점심공양을 위해 각왕전으로 내려가다.

 

 

 

 

 

 

 

 

 

올해는 도시락.

 

 

 

 

맛난다.

 

 

 

 

식사 후 제석사의 배려로 암용추를 구경하기로 하다.

 

 

 

 

 

 

 

 

 

암용추.

 

계룡산 숫용추-암용추 전설

 

남선면 용동리와 부남리에 가보면 계룡산의 정기를 받은 바위로 된 못(웅덩이)이 있는데 용화사 앞산 계곡에 있는 못을 암용추라 하고 신도안에서 서문다리로 가는 계곡에 못이 또 하나 있는데 이를 숫용추라 한다.

옛날 계룡산 땅속에 암용과 숫용 두 마리가 사이좋게 살고 있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들은 때가 되면 하늘로 올라갈 것을 기대하면서 즐겁게 살아가고 있었다. 두 용은 계룡산 밑을 파서 산의 물을 금강으로 흐르게 하였고, 땅속으로는 신도안에서 갑사·동학사·마곡사 쪽으로 어디든지 다니면서 행복하게 살았다. 명산의 정기를 받아서인지 참으로 깨끗한 용들이었고 항상 하늘에 올라갈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당시 땅위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이무기들은 추잡하게 살면서 그들도 하늘의 부름을 기다렸다. 용들은 그런 이무기들을 가소롭게 여겨 추잡한 행동을 보지않으려고 몸을 땅위에 전혀 나타내지 않은 채 굴속과 물속에서만 지냈다. 용들은 몹시 비가 내릴 때나 천둥이 칠 때 혹시 하늘에서 자기들을 부르지나 않을까하고 굴속에서 눈을 내놓고 하늘을 바라봤다. 하루는 몹시 비가 내리는데 밖을 내다보는 것을 잊고 땅속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때 하늘에서 용들을 불렀지만 대답이 없어 더 큰 목소리로 부르자, 그때서야 알아 듣고 굴속에서 밖을 내다보았다. 「대체 너희들은 하늘의 부름을 거역하려는 것이냐」「너희들은 항상 땅에서만 살려느냐」하고 하늘에서 추상같은 호령이 떨어졌다. 용들은「잘못했습니다」「한번만 용서해 주십시오」하고 빌면서 애원했다. 그러자 「땅의 껍질을 벗겨라. 그리고 언제든지 하늘에 올라올 수 있도록 준비를 해놓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한가지 주위해야 할 것은 너희들의 정(情)이 너무 지나치니 따로 따로 자리를 정해 다시는 만나지 말아라」하는 소리가 하늘에서 들려오더니 날씨가 잠잠해졌다.

 

그들은 헤어지기가 아쉬웠지만 하늘의 뜻을 거역할 수 없어 작별을 고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서로 하늘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제각기 장소를 정해 땅을 파기 시작했다. 암용은 물이 꼬불꼬불 흘러 내리다가 맑은소(沼)를 이루는 장소를 택해 땅을 파기 시작했다. 숫용은 계룡산의 정기가 흐르듯 맑은 물이 흐르다가 폭포를 이루는 아래쪽 계곡에 자리를 잡고 땅을 파들어 갔다. 이제는 하늘에 올라갈 준비가 거의 다 되었다.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천둥 번개와 함께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용들은 이제는 하늘로 올라갈 수 있는가보다 생각하며 못에서 살그머니 머리를 내미니 하늘에서 「때가 되었으니 어서 올라오너라」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 후 두마리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본 이곳 사람들은 암용이 하늘로 올라간 자리를 암용추, 숫용이 올라간 자리를 숫용추로 불렀다. 또한 암용추와 숫용추는 옛날에는 땅속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어 두용이 땅속을 통해 서로 만났다고도 전해진다.

 

관련기사

계룡산이 감추어 놓고 싶은 신비 숫용추-암용추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776461

 

 

 

 

 

 

 

암용추 바로 아래에는 움푹 패인 듯한 구덩이가 있는데 용의 알이 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0룡건설 이00 회장이 이곳에서 용의 알 모양을 한 돌을 몰래 꺼내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용의 알 구경중.

 

 

 

 

 

 

 

 

 

 

 

 

 

 

다시 구룡콘도로 향하다.

 

 

 

 

용동저수지.

 

 

 

 

 

 

 

 

 

 

 

 

 

 

 

 

 

 

 

구룡콘도에서 차를 몰고 논산 봉황사로 향하다.

 

제석사 행사 종료.

12시 정각.

 

논산 봉화사.

 

이곳은 특이하게 사찰에서 추첨으로 경품을 준다.

오후 12시 45분.

 

봉황산 전망대 가는길.

 

 

 

 

봉황산 전망대.

 

 

 

 

 

 

 

 

 

전망대에서 바라본 봉화사.

 

 

 

 

탑정호.

 

 

 

 

봉황산 정상으로 오르다.

 

봉황산 정상 

128.4m

 

단체사진.

 

 

 

 

 

 

 

 

 

 

 

 

 

 

다시 봉화사로 내려온 후

탑정호 수변공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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