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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은 빨갱이''
''전라도는 빨갱이 소굴''...
그 누군가에 의해 500만 호남인들의 핏속에 새겨져 수십년이 지나도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는 저주받은 낙인....
반세기가 넘게 남북으로 갈라진 체 서로를 미워하고 있는 이 좁은 땅에서, 이 '저주받은 낙인' 을 새긴 자들에 의해 또다시 동서로 갈라져 서로를 미워하고 있는 우리 민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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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여러분에게 누가, 왜, 언제부터 도대체 무슨 의도로 호남인들에게
'빨갱이'라는 저주의 낙인을 찍었는지, 또 그로인해 우리 민중들의 가슴에 속에 잉태된 '증오의 씨앗' 을 그들이 어떻게 이용했는지 여러분들에게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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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4월,
신민당 김대중 대통령 후보의 부산유세장.
.발디딜 틈 없이 인산인해를 이루며 꽉 들어찬 유세장 곳곳에서 김대중의 연설을 들은 부산시민들의 감탄사가 이 곳 저 곳에서 터져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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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와, 우리 경상도에는 김대중이 같은 인물
이 없노...''
''전라도에서 대통령감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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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여러분들은 김대중에 대해서 부산시민들이 이런 말을 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으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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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것은 전부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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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대 기수론'을 슬로건으로 내세운 신민당 김대중후보의 인기는 부산 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가히 '열풍 '이라고 할 정도로 폭발적인 방향을 일으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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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그 당시의 배경을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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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으로 집권한 박정희의 군부세력)
69년부터 박정희는 3선개헌을 통해 종신대통령을 획책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재야와 언론의 반대, 학생운동은 거세게 일어났고, 70년 11월에 열악한 노동현장의 비참한 현실을 고발하며 전태일 청년의 분신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전태일열사의 장례식)
이러한 상황속에서 민심은 이미 박정희에게서 등을 돌리고 정권교체를 바라는 마음이 김대중 후보의 등장과 함께 현실로 다가왔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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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여론조사에서 박정희와 김대중의 지지율이 엇비슷하거나 김대중의 지지율이 높게 나오는 상황에 이르자 박정희와 공화당 그리고 매국언론들은 삼위일체가 되어 영남인의 가슴속에 차마 입에 담지도 못할 망언을 공공연하게 유포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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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우리 현대사에서 '지역주의의 망령' 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경상도 대통령을 뽑지 않으면 우리 경상도는 개밥의 도토리가 될 것이다''
-국회의장 이효상'-
''김대중이가 대통령이 되면 경상도에는 피바람이 불 것이다''
-중앙정보부의 선동문구-
''김대중이 정권을 잡으면 모조리 모가지가 날아 갈 것이다''
-경상도 공무원들에게 공화당의원이-
''경상도 사람치고 박정희 안 찍는 사람은 미친사람''
-1971년 4월 18일 조선일보-
''김대중 후보가 이번 선거는 백제와 신라의 싸움이라고 똘똘뭉치자고 했으니 우리도 뭉치자''
-1971년 4월 18일 중앙일보-
*동아일보는 이 때까지만해도 지금의 한겨레의 역할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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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거짓된 비열한 낭설을 영남 전역에 퍼뜨리면서 드디어 1971년 제 7대 대통령 선거를 맞이하게 됩니다.
(박정희의 공작에도 불구하고 부산지역의 득표를 주목해주십시오)
결과는요?
네. 맞습니다. 잘 들어 먹었죠. 하지만 그 결과는 94만표 차이
로 박정희가 이겼지만 실질적으로 '신민당 김대중후보의 승리' 였습니
다.
당시 야당 선거 참관인이 경상도에서 협박과 수작에 발이 묶여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공공연하게 '선거조작'이 이루어졌고 또 이른바 '피
아노표'-손에 먹을 묻히고 투표용지를 더럽혀서 무효표로 만든것-가 엄청
나게 많이 나왔으며, 60만 군대의 표가 '자동으로' 박정희표가 되었음에
도 불구하고 94만표차이 라는 것은 박정희에게서 민심이 떠났음을 의
미했고, 이는 박정희가 '유신' 을 시행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박정희의 왕국에서 가장 큰 위협 인물이 되어버린 김대중은 여러차례 죽음의 고비를 맞이하고
(김대중납치사건-중정에 손에 의해 죽을 고비를 넘긴후의 인터뷰장면)
유신정권의 암살시도에서 살아남은 김대중은
이 때부터
빨갱이 라는 '저주받은 낙인'을 부여 받습니다. 덧붙여 전라도도
빨갱이소굴 이라는 '특별자치구'의 명칭까지 부여받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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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부터 김대중의 고난과 호남인에 대한 편견이 시작되어 오
늘날까지 끝없이 반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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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박정희의 죽음과 함께 찾아온 '서울의 봄'
그 짦은 시간 이후에 우리 민중들은 또 다시 권력을 쟁취하지 못하고...
또 다시 신군부 세력에게 민주주의를 억압당하게 됩니다
5.16쿠데타의 후계자들 답게 이들 또한 그들의 선배가 사용했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합니다.
또 다시 김대중과 호남인을 빨갱이로 만들고
전라도를 빨갱이 소굴로 만드는 것이죠.
(청주교도소에 수감당한 김대중과 면회온 가족들)
그 이후에 이들 신군부에 의해 우리 헌정사상 최고 비극이 자행됩니다.
........
이것이 제가 알고있는 내에서 여러분에게 말씀드릴 수 있는
'저주받은 낙인'
김대중은 빨갱이, 전라도는 빨갱이소굴..의 전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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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라도민여러분.
저는 항상 여러분들에게 고마운 마음과 함께 일종의 죄송스러운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79년 부마항쟁이 박정희의 암살로 흐지부지 끝나고 자칫 부산 마산 지역에서 일어날 뻔한 일이 80년 광주에서 자행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여러분들에게 애틋한 정과 자랑스러운 마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역사에서 여러번 나타나는 호남의 불의에 항거하는 '민중저항정신'(EX동학농민항쟁,광주학생만세운동,광주민주화항쟁)은 우리 '한민족 민중사' 의 큰 자랑이고 앞으로도 영원히 회자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경상도를 대표하는 대표성은 없지만, 경상도에도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지신 분들이 무척 많다는 것을 알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
우리 절대 경상도, 전라도 이렇게 편갈라서 싸우고 미워하지 맙시다.
지금 대한민국을 장악하고 있는 반민족매국노세력들은 우리 민중이 분열되고 편을 갈라 싸우는 것을 무엇보다 바라고, 이것을 철저히 이용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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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우리 민중이 편을 갈라 분열되어 싸운 결과, 우리 민중은 수십년동안 통한과 슬픔, 그리고 치욕과 굴욕으로 점철된 역사를 살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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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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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순박하고 양심적으로 살던 사람들이 단지 '인간다운 삶' 을
살고자 하는 열망으로 거리에 나와 태극기를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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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광주에서 그러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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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6월에 그러했으며...
....그리고 오늘날도 그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위의 수십년동안 반복된 사실들을 보면, 우리 자식들과 후손들이 또 다시 이런 고난을 겪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지 않습니까?
우리 절대로 다음세대들에게는 이런 수모와 치욕의 역사를 물려주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민주세력들은 지역이나 이념, 생각의 차이를 넘어서서 절대로 분열과 갈등을 보여서는 않되겠습니다.
우리가 분열되고 갈등을 일으키는 양상을 보인다면, 반기는 자들은 누구이며 결국 피해를 입는 것은 누구인지...금방 답이 나올 것입니다.
''우리는 수구세력에 맞서 이 땅에서 끈질기게
살아온 다 같은 역사 속의 민중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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