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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산책

궁남지,국립부여박물관,백제향,국립공주박물관

by [대전]풀때기 2012.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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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남지,국립부여박물관,백제향,국립공주박물관- 

  

 

궁남지 위치: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17

국립부여박물관 위치:충청남도 부야군 부여읍 동남리 16-1

백제향 위치: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653-1

국립공주박물관 위치: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 360

 

 

궁남지

 

최초의 인공 정원

경주의 안압지가 통일신라 궁궐건축의 당당함을 보여준다면 궁남지의 차분한 아름다움은 백제의 단아한 옛 멋을 느끼게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 연못이라 하여 사가의 작은 정원을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궁궐의 남쪽이라는 뜻의 궁남지는 수양버들이 하늘거리는 주변을 따라 산책하기에 좋다. 신선이 노니는 산을 형상화하였다는 연못 중심의 작은 산에는 정자가 세워져 있는데 연못을 가로지르는 다리와 어울려 그 모습이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하다. 신라 진평왕의 딸인 선화공주와의 아름다운 사랑으로 유명한 백제 무왕의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부여 사비성의 이궁지로도 추측되는 궁남지는 넓은 주변으로 연꽃을 종류별로 재배하는 공원이 조성되어 여름철 연꽃이 필 때면 더욱 아름답다.

 

출처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 최정규, 박성원, 정민용, 박정현, 마로니에북스

 

 

 

국립부여박물관

 

부소산성과 정림사지의 출토 유물에서 최근 발견된 금동대향로까지 백제의 역사와 충청남도 지역의 역사까지 자세하게 살펴보고 싶다면 부여박물관을 찾아보자. 해방 이후 개장한 대부분의 지방 국립박물관들과 달리 부여박물관은 일제강점기인 1929년 문을 열었다. 자신들의 뿌리라고 여기는 백제의 유물들을 발굴하고 전시하기 위한 일제의 정책이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라고도 하겠다. 백제의 옛 건물을 재현한 박물관 건물 내부는 중앙으로 조성한 작은 정원 안 석조를 중심으로 시대별, 주제별로 정리되어 있다. 화려한 신라 유물과 달리 차분하면서도 세련미를 갖춘 백제의 유물들을 감상할 수 있다.

금동미륵반가사유상 등 불교문화를 중심으로 전시되는 1,000여 점의 유물 중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제2전시관의 백제금동대향로이다. 60여 센티미터의 향로는 1993년 능산리 왕릉 구역 내의 절터에서 발견되었다. 천 년의 세월을 보내면서도 신비하리만큼 완벽하게 제 모습을 갖춘 향로는 봉황과 용, 연꽃으로 표현되는 불교사상과 수미산을 형상화한 도교사상이 하나의 작품 속에서 조화를 이루는 동시대 최고의 걸작이다. 당시 동아시아 문화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던 백제와 그 수도 부여의 위상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야외 전시장도 꼭 둘러보자.

 

출처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 최정규, 박성원, 정민용, 박정현, 마로니에북스

 

 

 

백제향

 

우리나라에서 연잎밥을 처음 발명했다는 음식점

 

 

 

국립공주박물관

 

무령왕릉 출토 유물들을 한자리에

국립공주박물관은 무령왕릉과 함께 둘러보아야 할 곳이다. 무덤의 주인이 무령왕임을 밝혀 주고 있는 귀한 유물인 묘지석을 비롯하여 입구를 지키던 상상의 동물 진묘수, 금동신발·팔찌·목걸이 등 왕과 왕비의 몸에 치장되었던 장신구 등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대부분의 유물이 이곳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오수전이라는 동전과 은동그릇·접시 등에서 먼 길 떠나는 자를 배웅하는 산 사람들의 태도를 알 수 있다.

왕과 왕비의 베개와 발받침이 원형에 가깝게 보존되어 있는데 각각 검은색과 붉은색으로 색상이 비교된다. 그 밖에도 백제가 웅진, 공주를 도읍으로 삼았을 당시의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백제 문화의 중심지가 한성에서 웅진으로 옮겨지면서 중앙의 문화가 이곳의 토착문화와 어울려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불교미술실에는 백제 미술의 우화함을 잘 보여 주는 금동관음보살입상이 있다. 길이 25㎝의 작은 작품이지만 섬세하게 새겨진 옷의 주름과 온화한 얼굴에서 영락없는 백제의 미술품임을 알게 한다. 계유명천불비상도 이곳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유명한 소장품으로 비석에 새겨진 천불상이 발견된 경우가 많지 않아 귀한 유물이다. 실제로 비석에 새겨진 불상의 개수를 헤아려보면 900여 개가 넘는다고 하니 원래의 모양대로라면 1,000개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옛 공주박물관을 대신해 2004년에 새로운 박물관을 지어 옮겨왔다.

 

출처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 최정규, 박성원, 정민용, 박정현, 마로니에북스

 

 

 

주말을 맞이하여 부여 궁남지를 방문하다.

 

궁남지에서는 매년 부여서동연꽃축제(기간:2012.07.26(목)~2012.07.29(일))가 열리는데

올해는 7월말부터 가장 멋진 연꽃을 볼수 있을걸로 보여진다.

 

 

 

 

 

(손모양 아이콘을 눌러주세요)

 

 

 

 

 

 

 

 

 

 

궁남지의 전설

 

궁남지는 선화공주의 사랑으로 유명한 곳이며, 우리나라의 연못중 가장 오래된 인공연못으로서, 무왕 아들 의자왕이 궁녀들과 함께 풍류를 즐겼다고 전해지고 있다.
연못 가운데 신선이 산다는 방장산의 의미를 담은 작은 섬과 정자가 있으며 물위에 구름다리가 걸려있고 못 둘레에는 버드나무들이 늘어서 있다. 무왕은 풍수지리설에 따라 인근에 위치한 금성산에서 뻗어 내려오는 영기가 사방으로 흩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평야 한가운데 못을 만들었다고 전한다. 연못 한가운데 정자의 이름을 포룡정, 이곳에는 서동의 어머니와 관련된 전설이 내려온다.
궁궐 남쪽에 사는 한 여인이 어스름한 달밤 잠을 못 이루고 연못으로 산책을 나갔다. 그때 갑자기 못에서 물결이 일더니 용이 나타나 여인을 노려보았다. 그후 태기를 느낀 여인은 열달 뒤 한 아이를 낳았다. 과부의 몸에서 태어난 이 아이는 어려서부터 늘 마(薯?)를 캐어 팔아 집안 생계를 도왔기에 서동(薯童), 곧 맛동이라 불렀다. 포룡이라는 이름은 용과 정을 통했다는 기이한 이야기에서 유래됐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삼국사기에 실려있는 이 전설을 하나의 은유로 보고 있다. 용은 곧 임금이고 서동은 임금과 미천한 신분의 여인 사이에서 출생한 서자라는 주장이다.
성년이 된 서동은 왕의 밀명을 받고 서라벌 정탐을 위해 신라에 잠입했다가 미모의 선화공주에게 반한다. 서동이 적국의 공주를 손에 넣기 위해 아이들에게 부르게 했던 노래가 바로 향가 서동요다. 그러나 누가 알았으랴, 그의 계략이 용케 적중할 줄을. 서동을 밤마다 안고 잔다는 노래 때문에 공주는 궁에서 쫓겨나고 서동과 함께 백제에 와서 살게 되었으며 한걸음 더 나아가 백제의 왕(제 30대 武王)이 되었다. 연못은 인공적으로 동그랗게 또는 네모 반듯하게 꾸며진 것이 아니라 물이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연못 모양이 자연스럽게 형성되도록 만들어졌다.
그러나 3만평에 달하는 거대한 연못이 천년 세월을 거치는 동안 조금씩 흙으로 메워져 크기가 3분의 1정도로 줄어들어 현재는 1만 3,772평에 이른다. 경주의 안압지보다 40년이나 앞서 조성되었다는 우리 나라 최초의 인공조원, 이 둥근 못 한가운데 작은 섬이 떠 있고 못가에 휘늘어진 버드나무 가지가 한가롭다. 찾는 발길이 적어 더욱 한가롭고 평화스러운 궁남지, 이 연못에서 더욱 진한 백제의 향기를 느낄 수 있기를....

 

솟대

 

 

 

 

 

 

 

 

 

 

 

 

 

 

 

 

 

 

 

 

 

 

 

 

 

 

 

 

 

 

 

 

 

 

 

 

 

 

 

 

 

 

 

 

 

 

 

궁남지 호수에 서식하는 거북이

 

 

 

 

 

 

 

 

 

 

 

 

 

 

 

 

 

 

 

 

 

 

 

 

 

 

 

 

 

 

 

 

 

 

 

 

 

 

 

포룡정(抱龍亭)

 

 

 

 

 

 

 

 

 

 

 

 

 

 

 

 

 

 

 

 

 

 

 

 

 

 

 

 

 

 

 

 

 

 

 

 

 

 

 

 

 

 

 

 

 

 

 

궁남지의 연꽃

 

이곳은 50여 종류 100만 송이의 연꽃 군락지로서 국내 최대규모라고 한다.

 

 

 

 

 

 

 

 

 

 

 

 

 

 

 

 

 

 

 

 

 

 

 

 

 

 

 

 

 

 

 

 

 

 

 

 

 

 

 

 

 

 

 

 

 

 

 

 

 

 

 

 

 

 

 

 

 

 

 

 

 

 

 

 

 

 

 

 

 

궁남지 구경을 마치고 국립부여박물관 방문

 

 

 

 

 

 

 

기획전시관에서는 -신과의 만남,백제의 제사- 전시를 한다.

 

 

 

 

 

 

 

전시기간 2012.05.25~2012.08.19

 

 

 

 

 

 

 

 

 

 

 

 

 

 

 

 

 

 

 

 

 

 

 

국립부여박물관 본관

 

 

 

 

 

 

 

무료입장

 

 

 

 

 

 

 

 

 

 

 

 

 

 

 

 

 

 

 

 

 

 

 

 

 

 

 

 

 

 

 

민고리자주칼

 

 

 

 

 

 

 

금동귀걸이

 

 

 

 

 

 

 

백제금동대향로

 

국보 287호

 

백제 나성과 능산리 무덤들 사이 절터 서쪽의 한 구덩이에서 450여점의 유물과 함께 발견된 백제의 향로이다. 높이 61.8㎝, 무게 11.8㎏이나 되는 대형 향로로, 크게 몸체와 뚜껑으로 구분되며 위에 부착한 봉황과 받침대를 포함하면 4부분으로 구성된다. 뚜껑에는 23개의 산들이 4∼5겹으로 첩첩산중을 이루는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피리와 소비파, 현금, 북들을 연주하는 5인의 악사와 각종 무인상, 기마수렵상 등 16인의 인물상과 봉황, 용을 비롯한 상상의 날짐승, 호랑이, 사슴 등 39마리의 현실 세계 동물들이 표현되어 있다. 이 밖에 6개의 나무와 12개의 바위, 산 중턱에 있는 산길, 산 사이로 흐르는 시냇물, 폭포, 호수 등이 변화무쌍하게 표현되어 있다. 뚜껑 꼭대기에는 별도로 부착된 봉황이 목과 부리로 여의주를 품고 날개를 편 채 힘있게 서 있는데, 길게 약간 치켜 올라간 꼬리의 부드러움은 백제적 특징이라 하겠다. 봉황 앞 가슴과 악사상 앞뒤에는 5개의 구멍이 뚫려 있어 몸체에서 향 연기를 자연스럽게 피어오를 수 있게 하였다. 몸체는 활짝 피어난 연꽃을 연상시킨다. 연잎의 표면에는 불사조와 물고기, 사슴, 학 등 26마리의 동물이 배치되어 있다. 받침대는 몸체의 연꽃 밑부분을 입으로 문 채 하늘로 치솟 듯 고개를 쳐들어 떠받고 있는 한 마리의 용으로 되어 있다. 이 향로는 중국 한나라에서 유행한 박산향로의 영향을 받은 듯 하지만, 중국과 달리 산들이 독립적·입체적이며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창의성과 조형성이 뛰어나고 불교와 도교가 혼합된 종교와 사상적 복합성까지 보이고 있어 백제시대의 공예와 미술문화, 종교와 사상, 제조기술까지도 파악하게 해 주는 귀중한 작품이다.

 

출처: DAUM문화유산

 

 

 

 

 

 

 

 

 

관람을 마치고 부여에서 연잎밥으로 가장 유명하다는 백제향에서 식사

 

 

 

 

 

 

 

대다수의 사람들은 연잎밥을 먹는다. 가격 1인 기준 11000원 

(인터넷 검색으로 나오는 사진은 거의 백령향이다 1인 기준 16000원)

 

 

 

 

 

 

 

연잎밥 차림상

 

 

 

 

 

 

 

연잎밥의 맛이 참 좋다.

 

허나 1번 이상은 재방문하기 싫은 집...

 

이유는

오후 2시 반에 방문했는데도 많은 사람들로 인해 기본 30분 이상 기다려야 하고 내온 음식중에 전 뒷편이 새까맣게 탔으며 

 음식에 파리가 자주 내려앉아 먹기가 거북했다.

 

그저 한번쯤 먹어볼만한 음식...

 

 

 

내친김에 대전으로 돌아오는 길에 국립공주박물관도 관람하다.

 

 

 

 

 

 

 

기획전시실에서는 타임탭슐을 열다 -색다른 고대 탐험-을 특별전시한다.

(2012.05.24(목)~2012.08.26(일))

 

 

 

 

 

무령왕릉 발굴과정

 

 

 

 

 

 

 

뒤꽂이(왕)

 

국보 159호 

 

 

 

 

 

귀걸이(왕)

 

국보 156호

 

 

 

 

 

관장식(왕)

 

국보 154호

 

 

 

 

 

관장식(왕비)

 

국보 155호

 

 

 

 

 

목걸이(왕비)

 

국보 158호

 

 

 

 

 

국립공주박물관 연결통로 부지 우물에서 발견된 1200년된 7~10세 가량의 어린아이의 뼈

 

우물 내부에서 확인되는 유물 출토층 상부에서 확인된 이 어린아이 뼈는 동물뼈와 토기류 등과 얽혀있는 상태였다. 무덤이 아닌 우물 속에서 발견 이 아이는 누구이며, 왜 우물 속에서 발견되어야만 했던 것일까?

귀족이나 왕족의 아이가 실수로 우물에 빠져 죽은 후 건져내어 제사를 지낸 후 다시 우물에 넣고 마지막에 상석을 넣었을 가능성이 있다.그렇다면 이 우물은 아이의 무덤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인데. 굳이 상류층의 아이가 우물에 빠져죽었다고 해서 우물에 다시 넣어 제사를 지냈을까? 특별히 관리되었던 우물에 부정이 탔다고 생각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이 아이가 희생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대규모 왕실 차원의 우물 제사에 수많은 동물들과 함께 희생된 공양물이 가능성이 있다. 이 아이의 뼈는 동물뼈들과 함께 얽혀 있는 상태였고 유물과 동물 뼈 중에서도 맨 윗부분에서도 확인된 점, 그 위에 우물 상석까지 넣고 우물을 폐기한 점으로 미뤄 희생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모든 관람을 마치고 대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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