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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이 좋아 산을 찾아 산에 마음을 두어...
산행/대청호 명산 천리길

충북 옥천 서남봉 223M 여수울산 235M 큰음달산 429M 하마산(下馬山) 350M -대청호 명산 테마산행 16번째-

by [대전]풀때기 2013.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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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옥천 서남봉 223M 여수울산 235M 큰음달산 429M 하마산(下馬山) 350M

-대청호 명산 16번째-

 

 

산행날짜: 2013.02.24 (일)

 

산행코스: 인포리 걸포마을 진입 입구 -> 서남봉 -> 화학성지 -> 여수울산(전주이씨묘역) -> 메타세콰이어숲 -> 

              362M 봉 삼각점 -> 385M 봉 삼거리 -> 큰음달산 -> 385M 봉 삼거리 -> 하마산 -> 중봉 조헌묘,표충사  

 

산행거리: ? km 내외

 

산행시간: 4시간 36분 (AM 09:47 -> PM 02:23) -점심식사,휴식 포함-

차량회수 도로 도보시간: 12분 (PM 02:25 -> PM 02:37)

 

산행 초입부분 차량주차 주소: 충북 옥천군 안내면 인포리 152-2

산행 초입부분 찾아가는 주소: 충북 옥천군 안내면 인포리 170-2

 

하산지점 근처 차량주차 주소: 충북 옥천군 안남면 도농리 649-3

하산지점 주소: 충북 옥천군 안남면 도농리 927

 

 

산행속도: 걸을때는 보통걸음 쉴때는 푸욱~

산행난이도: 중하(등산로 곳곳이 사림이 자주 다니지 않아 길이 험한편)

산행날씨: 구름많음

 

 

참가자: [대전] 여행과산행 소속 8명

           (타이거,법운,산에,푸름,밤비,Carl(카알),뚜벅이,풀때기)

 

회비: 20,000 원 (차량유지비,뒤풀이 비용 포함)

뒤풀이: 춘추민속관

 

뒤풀이 장소: 춘추민속관

뒤풀이 메뉴: 문향헌 약술 , 부침개 , 두부김치

춘추민속관 주소: 충북 옥천군 옥천읍 문정리 6-3 (옥천읍 향수3길 19)

 

 

주관자: 타이거

 

 

산행일정

 

가양비래공원                   AM 08:36

인포리 걸포마을 진입 입구 AM 09:42

서남봉                            AM 10:06

화학성지                         AM 11:00

여수울산(전주이씨묘역)    AM 11:24

메타세콰이어숲                AM 11:31

362M 봉 삼각점               AM 11:45

385M 봉 삼거리               PM 01:09

큰음달산                        PM 01:27

385M 봉 삼거리               PM 01:48 

하마산                           PM 02:06

중봉 조헌묘,표충사          PM 02:23

도농교                           PM 02:37

정지용 문학관                 PM 03:18

춘추민속관                     PM 03:48

가양공원                        PM 05:32

 

 

 

충북 옥천 서남봉,여수울산,큰음달산

 

자료없음

 

 

충북 옥천 하마산(下馬山) 350M  

 

안남면 도농리 뒷산으로 산이 높고 험해서 산을 넘으려면 말에서 내려 걸어서 넘어야 했다는 기록이 있다.

중봉선생의 묘 남쪽 상주~보은 옥천의 옛길인 싸리재 고개 입구에 하마비(下馬碑)가 있는데 하마비란 ‘이 곳부터는 말에서 내려 걸어가라’는 알림판으로 그 앞을 지날때에는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타고 가던 말에서 내리라는 뜻을 새긴 석비이다

왕장이나 성현 또는 명사 고관의 출생지나 분묘앞에 세워져 있다

 

일부 출처

대청명산20선 책

 

 

다녀간 서남봉,여수울산,큰음달산,하마산 지도

 

 

 

 

 

 

 

가양비래공원 집결

 

AM 08:30

 

 

 

 

 

타이거님의 산행지에 대한 설명도중 

 

처음보는 단체의 분들이 대청호 산행에 참가하기 위해 오셨다고 한다.

그러나 처음 온 분들이 모두 도시락을 지참하지 않으셨다고 하여 이분들이 혹시 다른 대청호 관련 까페와

여행과산행 대청호 명산산행팀 모임을 혼동하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타이거님을 통해 조심스레 물어보니

대청호 1박2일 동호회에서 오셨다고 한다.

 

알고보니 이날 대청호 1박2일 동호회에서 비슷한 시간대에 우리 대청호 명산 산행팀과

모임집결 장소로 같은 장소인 가양비래공원으로 잡혀 대청호1박2일 동호회 회원분들이 

여행과산행 동호회 대청호 명산 산행팀을 대청호 1박2일 동호회로 혼동하신 것이었다.

 

 

지각하신 Carl(카알)님

 

상황정리후 산행지로 출발...

 

 

 

 

 

산행 진행을 위해 동원된 차량 2대중 1대는 하산지점으로 예측되는 안남면 도농리 도농교 부근에 주차하고 

나머지 1대는 산행 출발지점에 주차 

 

PM 09:42

 

 

 

 

산행 준비

 

 

 

 

 

 

 

산행 출발

 

AM 09:47

 

 

 

 

 

 

 

 

 

 

 

 

 

인포리 걸포마을 진입 입구에서 화살표 방향으로 오르다

 

길은 다소 험함

 

 

 

 

 

 

 

 

 

 

 

 

 

 

 

 

 

 

 

 

 

산중턱에서 뒤를 바라보니 간간히 대청호가 보인다.

 

 

 

 

 

 

 

문화유씨 묘

 

AM 09:56

 

 

 

 

 

 

 

 

 

 

 

 

 

 

 

 

 

 

 

 

 

두번째 묘

 

AM 10:00

 

 

 

 

 

 

 

 

 

 

 

 

 

 

 

 

 

 

 

 

 

 

 

 

 

 

 

 

 

서남봉 정상 223M

 

AM 10:06

 

누군가 돌삐에 이곳이 서남봉 정상이라는 표시를 해놨다.

집에와 자료를 찾아보니 2012년 3월 18일 대구 신암산악회에서 산여울님이 써 놓으신 것이다.

 

고맙습니다 ^^

 

소나무 나뭇가지에 시그널을 매달다.

 

 

 

 

 

 

 

서남봉 정상에서 바라보는 조망

 

 

 

 

 

 

 

이슬봉이 보인다.

 

2013년도 대청호 명산 산행팀 계획표에 3월달 산행지로 결정된 곳이다. 

 

 

 

 

 

 

 

 

 

 

 

 

 

다들 조망을 감상하기에 바쁘다.

 

 

 

 

 

 

 

단체사진을 남기다.

 

 

 

 

 

 

 

이날 일이 바쁘셔서 대청호 명산 산행에 참석하지 못한 단테님을 위해

 

단테님 모자를 서남봉 정상석에 씌워주고 인증샷을 남기다.

 

 

 

 

 

다들 주전부리를 꺼내어 이야기 꽃을 피운다.

 

 

 

 

 

 

 

 

 

 

 

 

 

 

 

주변을 정리한후 출발

 

AM 10:31

 

 

 

 

 

 

 

 

 

 

 

 

 

 

 

 

 

 

 

 

 

서남봉 기준으로 남동쪽면 대다수가 벌목이 되어 있다.

 

 

 

 

 

 

 

뒤돌아본 서남봉

 

 

 

 

 

 

 

 

 

 

 

 

 

 

 

 

 

 

 

 

 

 

 

 

 

 

 

 

 

 

 

서남봉과 화학성지 중간지점에서 북쪽을 바라보니

[대전] 여행과 산행 대청호 명산 산행팀에서 2012년 4월 22일 대청호 명산 6번째 산행지로 다녀간

수북산(수복봉),왕재봉,가재봉이 보인다.

 

 

 

 

 

 

 

 

 

 

 

 

 

 

 

 

 

 

 

 

 

 

 

 

 

 

 

 

 

화학성지의 무너진 성벽터

 

 

 

 

 

 

 

화학성지 정상 부근

 

AM 11:00

 

 

 

 

 

이곳이 화학성지라는 표시를 시그널에 하여 나뭇가지에 매달다.

 

 

 

 

 

 

 

올라가야할 능선

 

 

 

 

 

 

 

화학성지 부근은 넝쿨 천지인데 넝쿨을 치고 앞으로 나아가기가 다소 벅차다.

 

 

 

 

 

 

 

넝쿨 사이사이 이어진 희미한 길로 앞으로 전진

 

 

 

 

 

 

 

 

 

 

 

 

 

 

 

 

 

 

 

 

 

 

 

 

전주이씨 묘역

 

AM 11:23

 

묘에서 가장 높은 자리가 여수울산 정상

 

 

 

여수울산 정상 235M

 

AM 11:24

 

 

 

 

 

 

 

 

 

 

 

 

 

여수울산에서 진행한지 5분 정도 되자 메타세콰이어 숲이 나타남

 

AM 11:31

 

 

 

 

 

잡목과의 실랑이중에 만난 멋진 메타세콰이어 숲길은 산행중 신선한 샘물 한모금을 들이킨 듯한 시원함을 준다.

 


 

 

 

 

 

 

 

 

 

 

 

 

 

 

 

 

 

 

 

 

 

 

 

 

 

 

 

 

 

362M 봉 삼각점

 

AM 11:45

 

 

 

 

 

삼각점 기준 북쪽면 대다수를 벌목을 한 흔적이 있다.

 

 

 

 

 

 

 

362M 봉 삼각점에서 점심식사

 

 

 

 

 

 

 

점심식사후 커피 한잔..

 

 

 

 

 

 

 

출발

 

PM 12:56

 

 

 

 

 

 

 

 

 

 

 

 

 

385M 봉 삼거리

 

PM 01:09

 

 

 

 

 

 

 

 

 

 

 

 

 

 

 

 

 

 

 

 

 

큰음달산 정상 429M

 

PM 01:27

 

 

 

 

 

 

 

 

 

 

 

 

 

다시 385M 봉 삼거리로 돌아감

 

 

 

 

 

 

 

385M 봉 삼거리에서 하마산 방향으로 진행

 

PM 01:48

 

 

 

 

 

 

 

 

 

 

 

 

 

하마산으로 진행도중 사단법인 산행환경문화원 레저토피아 탐사단에서

 

2009년 10월달에 설치한 청풍명월 산경걷기 시그널 발견

 

관련기사

(http://www.inews365.com/news/article.html?no=100393)

 

 

 

 

 

 

 

 

 

 

하마산 정상 350M

 

PM 02:06

 

 

 

 

 

하마산 정상에는 대구 신암산악회 산여울님이 

2012년 3월 18일날 돌삐에 하마산 정상이라고 표시한 흔적이 남아있다.

 

 

 

 

 

 

 

 

 

 

 

 

 

 

단체사진

 

 

 

 

 

 

 

 

 

 

 

 

 

 

 

하마산 정상 주변 조망

 

 

 

 

 

 

 

 

 

 

 

 

 

 

 

 

 

 

 

 

 

 

 

 

 

 

 

 

 

 

 

 

 

 

 

 

 

 

 

갈림길에서 중봉 조헌 묘가 있는 좌측으로 하산

 

 

 

 

 

 

 

 

 

 

 

 

 

 

 

중봉 조헌 묘

 

PM 02:23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대학자이며 의병장인 중봉(重峰) 조헌(1544∼1592) 선생의 묘소이다.

명종 22년(1567)에 문과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지냈다. 관직에 있을 때는 국가 정책에 있어 바른 말을 서슴치 않았으며, 특히 일본과의 친교정책에 목숨을 걸고 반대하였다. 학문에 조예가 깊었던 선생은 관직에서 물러난 뒤 옥천에 후율정사를 짓고 제자 양성과 학문을 닦는데 전념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천에서 의병을 모아 왜적을 공격하는데 앞장 섰으며, 영규대사가 이끄는 승군(僧軍)과 합세하여 청주성을 탈환하였다. 이어 금산에서 700명의 군사로 수만의 왜적과 싸우다 전원 전사하였다. 그 후 선생의 제자들이 700의사들의 유해를 거두어 한곳에 합장하고 칠백의총이라 하였다.

선생의 유해는 별도로 옥천군 도리동에 안장하였으나 인조 14년(1636) 현재의 위치로 이장하였다. 현재 묘역에는 묘비 2기가 있는데 하나는 우암 송시열 선생이 이곳으로 이장할 당시 선생의 공적을 기록한 것이다. 좌우에는 문인석과 망주석이 한 쌍씩 세워져 있다.

 

출처

문화재청

 

표충사

 

조헌(趙憲, 1544~1592)의 영정과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지당(池塘)에 비 뿌리고 양류(楊柳)에 내 끼인 제
사공(沙工)은 어디가고 빈 배만 매였는고,
석양(夕陽)에 짝 잃은 갈매기는 오락가락 하더라

 

 

 

 

 

 

 

 

 

 

 

 

 

 

 

 

 

 

 

 

 

중봉조헌신도비

 

신도비는 임금이나 고관의 평생업적을 기록하여 그의 무덤 남동쪽에 세워두는 것으로, 이 비는 조선 중기의 문신인 중봉 조헌(1544∼1592) 선생의 행적을 기리고 있다.


이 비에는 선생의 이 같은 생애와 최후 격전지였던 금산싸움에 대하여 자세히 적고 있다. 인조 27년(1649)에 세운 비로, 좌의정 김상헌이 글을 짓고, 이조판서 송준길이 글씨를 썼다.

 

출처

문화재청

 

 

 

 

 

 

 

 

 

도보로 도농교 부근에 주차한 차량회수

 

 

 

 

 

 

 

 

 

 

 

 

 

 

 

 

 

 

 

 

 

 

 

회수한 차량으로 산행출발지점에 주차한 또 다른 차량도 회수

 

PM 02:37

 

 

 

 

 

뒤풀이를 하기에는 이른 시간이라 정지용 문학관 방문

 

PM 03:18

 

 

 

 

 

정지용 생가

 

 

 

 

 

 

 

정지용 문학관 내부

 

 

 

 

 

 

 

춘추민속관에서 뒤풀이를 하기로 결정

 

 

 

 

 

 

 

춘추민속관을 안내하는 산에님

 

PM 03:48

 

이곳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뽑은 전국한옥 30선에 선정된 곳이다.

 

충청북도에서는 유일

 

 

 

 

 

 

 

 

 

 마중나온 춘추민속관 사장님

 

이날 춘추민속관에는 우리 대전 여행과 산행 대청호 명산 산행팀 외에도 또 다른 대청호 산행팀이 춘추민속관에서 뒤풀이를 하고 있었는데 대전둘레산길잇기 산행팀 이라고 한다. 

 

반갑습니다.

 

 

 

 

 

 

 

 

 

 

 

 

 

 

 

 

 

 

 

춘추민속관은 독립운동가 김규흥이 태어난 곳이다.

 

김규흥

 

신해혁명의 주도지 중 한 곳이었던 광둥(廣東)에서 혁명활동을 한 독립운동가 김규흥(1872∼1936). 그는 청나라 군인을 대상으로 혁명을 선전하고 혁명에 가담하도록 하는 중책을 맡았다. 보안을 요하는 임무 특성으로 그의 행적이 지금까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신해혁명은 2000여 년 중국의 전제정치를 끝내며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공화제를 주창한 혁명이다. 김규흥의 혁명 가담은 중국 혁명파의 지원을 이끌어내 조국의 독립을 앞당기기 위한 것이었다.

1872년 충북 옥천에서 태어난 그는 1905년 을사늑약을 전후로 자강운동과 애국계몽운동에 나서 1906년 옥천에 창명학교를 설립했다. 이후 고위직에 있던 외가 친척의 주선으로 고종의 밀명을 받아 중국 아청은행에 있는 고종의 비자금으로 중국에서 한인 무관을 양성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중국으로 향했지만 도중에 일제에 발각돼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1906년 말∼1907년 초 중국으로 망명해 상하이(上海)와 난징(南京)에서 활동하며 중국 혁명파와의 교류, 한인 무관 양성에 대한 지원을 약속받고 신해혁명에도 가담했다. 중국 망명 직후 조선의 국권 회복의 의미를 담아 이름도 김복(金復)으로 바꿨다.

1907년 말∼1908년 초 광둥으로 무대를 옮긴 그는 본격적인 혁명활동에 나섰다. 광둥 혁명활동의 중심인물이었던 추노(鄒魯)의 회고록에 따르면 김규흥은 워낙 성실했기 때문에 비밀문건을 보관하거나 전달하는 것은 모두 그를 통할 정도였다.

이런 공로로 그는 광둥지역에 혁명정부가 들어선 이후인 1913년 초 광둥 호군사서(護軍使署) 고문원(顧問員)에 임명됐다. 군부 서열 2, 3위에 해당하는 자리다. 신해혁명에 가담한 이유에 대해 김규흥은 미주한인회에 보낸 1911년 3월 7일자 편지에서 “중국에서도 광둥은 가장 개화가 빠른 지역이고 왜적에 대한 증오도 깊은 지역이라 독립운동을 도모하기에 가장 좋은 곳으로 판단해 수년째 활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규흥은 이후 독자적으로 활동하다 1936년 톈진(天津)에서 병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출처

동아일보 (http://news.donga.com/3/all/20111117/41937233/1)

 

 

춘추민속관 내부

 

 

 

 

 

 

 

이곳에서 직접 만든 문향헌 약술에

 

두부김치와 부침개로 배를 채우다.

 

 

 

 

 

 

 

 

 

 

 

 

 

뒤풀이후 가양비래공원 주차장에서 해산

 

PM 05:32

 

 

 

 

 

다음달에 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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