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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대전·세종·충청 근교의 산

충남 계룡 천마산 287M 논산 천호산(天護山) 366M

by [대전]풀때기 2013.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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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계룡 천마산 287M 논산 천호산(天護山) 366M 

 

산행코스: 논산경찰서 계룡지구대 -> 248M 봉 -> 천마정 -> 천마산 -> 천호산 -> 353M 봉 -> 대목재 -> 팔각정

              -> 연산,농공단지 

 

산행시간: 3시간 47분 (PM 12:14 -> PM 04:01)

산행거리: 9.2 km 내외

 

원점회귀 도로 도보시간: 15분 (PM 04:01 -> PM 04:16) 

원점회귀 도로 도보거리: 1 km

 

차량주차 주소: 충남 계룡시 엄사면 엄사리 211-8 (논산경찰서 계룡지구대 뒷편 주차장)

 

 

산행초입부분 주소:충남 계룡시 엄사면 엄사리 211-8

하산지점 주소:충남 논산시 연산면 송정리 107-8

 

연산 버스정류장 주소: 충남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 89-5

버스요금: 1300원

 

산행속도: 보통

산행난이도: 하

산행날씨: 구름 조금

 

 

참가자: 풀때기

 

 

산행일정

 

계룡지구대               PM 12:12

248M 봉                   PM 12:14

운동기구시설            PM 12:37

천마정                     PM 12:41

천마산 정상              PM 12:58

천마산 능선 종점       PM 01:27

천호산 정상              PM 02:48

353M 봉                   PM 03:20

대목재                     PM 03:32

팔각정                     PM 03:39

하산완료                  PM 04:01

송불암 미륵불           PM 04:08

연산 버스정류장        PM 04:16

시외버스 탑승           PM 04:20

계룡지구대 근처 하차 PM 04:31

 

 

충남 계룡 천마산 287M 

 

천마산 중턱에 집채만한 바위가 있는데 바위 한 가운데를 칼로 갈라놓은 것과 같이 잘려져 있는데 이 바위에 대한 전설이 있다.

때는 고려 중엽, 외세의 수차 침략으로 국가기강이 혼란한 틈을 타서 승려들까지 난동을 부리는 일도 있었다. 연산 천호리에서 고려 태조 왕건은 백제 신검을 하늘의 도움을 받아 물리치고 고려를 창건함에 따라 고결의 국운을 크게 연다는 뜻의 개태사라는 절을 지어 차후 승리의 기념과 국운 융창을 빌게 하고, 산남지방 유사시 병력으로 활용하기 위해 개태사에 수천 명의 승려를 두었다. 국력은 날로 어지러워지고 개태사의 세력이 강성해져 국가의 명령에 복종치 않고 승려들이 작당하여 인근 촌가를 습격 약탈하고 부녀자까지도 겁탈하는 횡포가 날로 심하였다.

 

이를 보다 못해 관군이 출동하여 바로 잡고자 하였으나 오히려 패하니 할 수 없이 이 사실을 나라에 상소하니 왕이 이를 바로 잡고자 수차 관군으로 이 절을 치게 하였으나 패하기만 하니 승려들은 더욱 강성해져 횡포가 더욱 심하였다. 개태사의 횡포로 인근 주민들이 살 수가 없게 되니 왕께서 크게 근심하여 개태사를 칠 계획을 논의하게 되었다. 이때 한 장수가 지원하였다. 그 장수는 최일 장군이었다. 최일 장군은 왕명을 받고 군사를 거느리고 연산 개태사에 도달하여 진영을 정비하고 개태사를 부근에 이르러보니 안개가 자욱하여 싸움을 할 수 없어 최일 장군은 하는 수 없이 퇴각하여 30여리 떨어진 노성방면에 진을 치고 부하 몇 사람을 데리고 개태사 뒷산에 올라 이 절의 동정을 살폈으나 안개로 인하여 절의 사정을 파악할 수 없어 최일 장군은 이 사실을 왕에게 상소하였다. 어느 날 최일 장군이 말을 타고 개태사를 향하여 가던 중에 있었다. 때는 산에는 꽃이 피고 나비가 나는 따스한 봄날이라 논과 밭에서는 농부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금암리 앞에 이르니 한 농부가 검은 암소로 논을 갈면서 "이 놈의 미련한 소야! 최일 장군 만큼이나 미련하고 어두운 소이구나"하며 논을 갈고 있었다. 이 소리를 들은 최일 장군은 말에서 내려 논을 가는 농부에게 물었다. "여보시오. 내가 바로 최일 장군인데 어찌해서 소를 보면 나같이 미련하다고 합니까?" 농부는 깜짝 놀라며 "아 당신이 최일 장군이십니까? 미안합니다. 장군께서는 아무리 개태사를 치려고 하나 저 천마산 중턱에 있는 암소바위가 개태사를 보호하고 있어 이 절을 치려하면 안개가 끼게 하여 절을 보호하니 암소바위를 칼로 내려 친 다음 개태사를 치면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말을 마친 농부는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다. 최일 장군은 신의 가르침이라 생각하고 마음으로 감사한 후 금암리 천마산 암소바위에 올라가니 과연 집채만한 바위가 있었다. 최일 장군은 장검을 빼어 암소바위 한복판을 내려치니 바위가 갈라지면서 피가 주르르 흘렀다. 최일 장군은 구대를 휘동하여 개태사에 이르니 거짓말처럼 연일 끼어있던 안개가 걷히고 있었다. 최일 장군은 일경에 개태사 승려들을 토벌하여 인근 주민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게 하였다.

 

이 암소바위 뒤 탕건바위 있는 곳에 하(河)씨들이 피난하였다는 바위굴도 있으며 용이 바위 뒤를 통과하여 용의 흔적도 있고 사람의 시신처럼 보인다 하여 송장바위라고 부르는 바위도 있다. 이와 같이 여러가지 바위들이 있다 하여「금암(金岩)」이라 부르고「금바위」라고도 부른다.

 

출처

알수없음

 

 

충남 논산 천호산(天護山) 366M 

 

고려 태조 왕건황산(연산)에 이르러 후백제 군사와 전투를 벌였다. 양쪽 군사들은 대낮이면 격전을 벌이고 밤엔 피로에 지쳐 전투를 멈추었다. 그러던 어느 날 왕건이 꿈을 꾸었다. 자신이 큰 밥솥을 머리에 이고 물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다음 날 왕건은 꿈 해몽을 잘하는 이를 수소문했다. 그랬더니 지금의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부인리 제밭[祭田]에 꿈 해몽을 잘하는 여인이 있다고 하였다.

왕건은 그 여인을 불러 꿈을 말하고 해몽하도록 하였다. 여인은 “귀인이 머리에 솥을 썼으니 왕관을 쓴 것이나 다름없고, 물속으로 들어간 것은 용궁으로 들어간 것이니 백성을 다스리는 상좌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기에서 싸우면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왕건은 이에 힘을 얻어 도선국사로 하여금 부처에게 적군을 물리쳐 줄 것을 기도하게 하였다. 그랬더니 어디선가 병사들이 나타나 후백제군을 물리쳤다. 이로 인해 왕건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이 일이 있은 후 왕건은 전쟁의 승리가 하늘의 보호로 이루어진 것이라 생각하고 병사가 나타났던 산을 천호산(天護山)이라 이름 지었다. 또한 승리의 공훈을 부처의 가호로 돌리고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개태사를 세워 손수 기원하는 글을 지어 부처에게 바쳤다. 아울러 태조의 진영을 모신 전각을 짓고 국립 대사찰로 부르게 하였다.

개태사의 전성기에는 1,000여 명의 승려가 화엄 법회를 가지는 등 승려 양성 도장의 역할을 하였는데, 대각국사의 장경불사(藏經佛事)도 이곳을 근거지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때 아닌 홍수로 개태사는 크게 훼손되어 옛날의 웅장했던 모습이 많이 사라졌다.

출처

디지털논산문화대전 

 

 

 

다녀간 계룡 천마산,논산 천호산 지도

 

 

 

 

 

 

 

논산경찰서 계룡지구대

 

PM 12:12

 

 

 

 

 

계룡지구대 뒷편 주차장에 차량주차

 

 

 

 

 

 

 

논산경찰서 계룡지구대 바로 옆에 있는 등산로

 

 

 

 

 

 

 

천마산,천호산 등산 안내도

 

 

 

 

 

 

 

산행 시작

 

PM 12:14

 

 

 

 

 

 

 

 

 

 

 

 

 

 

 

 

 

 

 

 

 

 

 

 

 

 

 

 

 

248M 봉

 

PM 12:25

 

 

 

 

 

 

 

 

 

 

 

 

 

248M 봉 조망

 

계룡시 엄사면 엄사리 방향

 

 

 

 

 

이정표 갈림길에서 팔각정 방향으로 진행

 

 

 

 

 

 

 

 

 

 

 

 

 

 

 

 

 

 

 

 

 

 

 

 

 

 

 

 

 

 

 

 

 

 

 

 

 

 

 

운동기구시설

 

PM 12:37

 

 

 

 

 

 

 

 

 

 

 

 

 

천마정

 

PM 12:41

 

 

 

 

 

천마정에서 바라보는 조망

 

계룡시의 금암초등학교와 우림루미아파트,신성미소지움아파트가 보인다.

 

 

 

 

 

 

 

 

 

 

 

 

 

 

 

 

 

 

 

 

 

천마정 바로 옆에 금바위의 유래 안내판이 있다.

 

 

 

 

 

 

 

금바위?

 

 

 

 

 

 

 

 

 

 

 

 

 

 

 

 

 

 

 

 

 

 

 

 

 

 

 

 

 

 

 

 

 

 

 

 

 

 

 

천마산 정상 287M 봉

 

PM 12:58

 

 

 

 

 

천마산 정상에는 이곳이 천마산 정상이라고 알리는 표지판 같은것은 없다.

 

 

 

 

 

 

 

금남정맥 설명문

 

천마산과 천호산은 금남정맥이라고 한다.

 

 

 

 

 

천마산 조망

 

 

 

 

 

 

 

 

 

 

 

 

 

 

 

천마산 능선 종점

 

PM 01:27

 

 

 

 

 

 

 

 

 

 

 

 

 

 

 

 

 

 

 

 

 

화살표 방향으로 진행

 

 

 

 

 

 

 

 

 

 

 

 

 

 

 

 

 

 

 

 

 

 

 

넘어온 천마산 능선

 

 

 

 

 

 

 

 

 

 

 

 

 

 

 

죽은 멧돼지 발견

 

PM 02:05

 

 

 

 

 

멧돼지 목 아래 부분 뼈가 다 드러난걸 보니

죽은후 짐승들에게 뜯겨 먹힌듯..

 

 

 

 

 

 

 

 

 

 

 

 

 

 

 

 

 

 

 

 

 

 

 

 

 

 

 

 

 

 

 

천호산 정상 366M

 

PM 02:48

 

천호산은 왕건이 후백제군과 전투도중 병사들이 산속에서 나타나 후백제군을 물리쳐 승리하였는데

전쟁의 승리가 하늘의 보호로 이루어진 것이라 생각하고 병사가 나타났던 산을 천호산(天護山)이라 이름을 지었다는 전설이 있다.

 

 

서래야 박건석님이 이정표에 매달아 둔 천호산 높이 표시에는 산 높이가 386M로 되어 있지만

국토지리정보원에서 발간한 지도에는 높이가 366M로 표시되어 있다.

 

 

 

 

 

 

 

 

 

 

 

 

 

 

 

 

 

 

 

 

 

 

 

 

 

 

 

 

 

 

 

 

 

 

 

 

 

 

 

 

 

 

 

 

 

 

353M 봉?

 

 

 

 

 

 

 

 

 

 

 

 

 

 

 

대목재

 

PM 03:32

 

 

 

 

 

 

 

 

 

 

 

 

 

천호산 남쪽 능선 끝부분에 있는 팔각정

 

PM 03:39

 

 

 

 

 

 

 

 

 

 

 

 

 

연산,농공단지 방향으로 하산

 

 

 

 

 

 

 

 

 

 

 

 

 

 

 

 

 

 

 

 

 

 

 

 

 

 

 

 

 

 

 

하산완료

 

PM 04:01

 

 

 

 

 

연산버스정류장으로 가기 위해 삼거리에서 좌측 논산 방향 진행

 

 

 

 

 

 

 

연산버스정류장 근처에 있는 송불암미륵불

 

PM 04:08

 

 

 

 

 

 

 

 

 

 

 

 

 

송불암 미륵불

 

송불암 미륵불석불사라는 옛 절에 안치되어 있었던 것으로, 당시의 석불사는 지금의 자리에서 동쪽으로 약 50m 들어간 산기슭에 있었으나 임진왜란 당시 불에 타 없어졌다고 전한다. 현재의 송불암(松佛庵)이란 명칭은 송불암 미륵불 바로 옆의 노송이 불상과 조화를 이루며 지붕처럼 퍼져 있기 때문에 붙여졌다고 전한다.


한편 송불암 미륵불을 보호하는 듯 보이던 소나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밑으로 처져 마치 송불암 미륵불이 소나무를 이고 있는 것처럼 보이자, 2000년 지금의 자리로 송불암 미륵불을 옮겼다 한다. 현재는 소나무가 부처에게 절을 하고 있는 형태로 배치되어 있다.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83호로 지정되었다.


송불암 미륵불은 통견(通肩)의 법의(法衣)가 가슴 부분에서 U자형을 이루었고, 옷자락의 주름은 얕은 선으로 조각되어 발목까지 내려온 입상(立像)이다. 왼손을 가슴에 대고, 오른손을 몸의 측면에 붙였으며, 오른팔에는 휘감긴 옷의 무늬가 있고, 왼손 역시 옷에 드리워져 있다. 목에는 삼도(三道)가 표현되어 있으며, 볼과 턱이 풍만하고 얼굴은 근엄한 표정이며 이마에는 백호가 있다. 대좌에는 복련(復蓮)이 표현되었으며, 옷자락 밑으로 드러난 발에는 발가락이 선명하다. 송불암 미륵불 주변에 주춧돌이 남아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본래는 정사각형의 전각 안에 안치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출처

디지털논산문화대전

 

 

 

 

 

 

 

 

 

송불암미륵불 (松佛庵彌勒佛)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 있는 이 미륵불은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석불사(石佛寺)의 불상이다. 지금의 송불암이란 명칭은 미륵불 바로 옆의 노송이 불상과 조화를 이루며 지붕처럼 퍼져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양쪽 어깨에 걸치고 있는 옷은 가슴부분에서 U자형을 이루었고, 옷자락의 주름은 얕은 선으로 조각하여 발목까지 내려왔다. 왼손은 가슴에 대고 있으며, 오른손은 몸의 측면에 붙이고 있다.
이 불상은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

문화재청

 

 

 

 

 

 

 

 

 

 

 

 

 

 

 

 

 

 

 

 

 

 

 

 

 

 

 

 

 

 

 

 

 

연산 버스정류장

 

PM 04:16

 

버스표는 황금할인마트 나들가게에서 구입

차를 주차한 계룡지구대로 가려면 계룡시 양정방향으로 달라고 하면 된다.

 

요금은 1300원

 

4시 25분에 버스가 온다고 했는데 4시 20분에 버스가 옴

 

 

 

 

 

 

 

계룡지구대 근처 버스 정류장에서 하차

 

PM 04:31

 

 

 

 

 

계룡지구대로 원점회귀 차량회수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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