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하동 금오산 849M,광양 매화마을
산행코스: 대송리 안내판 입구 -> 마애불 -> 금오산 -> 석굴암 -> 약사암 -> 정기룡 유허지 -> 하동 청소년수련원 주차장
산행거리: 7.3km 내외
산행시간: 3시간 30분 (AM 10:51 -> PM 02:21)
산행속도: 보통
산행난이도: 하
산행날씨: 맑음
주변 관광지: 광양 매화마을 (주소: 전남 광양시 다압면 도사리 141)
소요된 음료: 생수 1000ml
참가자: 풀때기 포함 소월 산악회 50명 (관광버스 1대)
회비: 17,000원
산행일정
대송리 안내판 입구 AM 10:51
등산로 진입 AM 11:08
마애불 PM 12:14
금오산 PM 12:32
석굴암 PM 01:01
약사암 PM 02:00
정기룡 유허지 PM 02:11
청소년수련원 주차장 PM 02:21
경남 하동 금오산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고전면·진교면에 걸쳐 있는 산.
금오산[ 849m]은 지리산이 동남쪽으로 뻗은 줄기로, 옥산에서 분기한 산줄기가 이명산을 거쳐 섬진강 만덕포구로 빠져 들기 직전 우뚝 솟은 둘레 약 30㎞의 웅장한 산이다. 바닷가에 있는 산 치고는 제법 높아 하동군이 해맞이 공원을 별도로 조성했을 정도로 남해의 섬들과 어울린 조망이 볼 만하다.
자그마한 산줄기가 바다를 건너다보는 모습이 자라와 닮아서라고도 하고, 오행으로 볼 때 산의 형상이 금상(金相)이라 금오산이라 명명했다고도 한다. 노적가리처럼 우뚝 솟아있어 소오산이라고 하기도 하고, 병목처럼 생겼다고 병요산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금오산은 일반적으로 화강암이라고 부르는 화강 섬록암으로 이루어진 산이다. 화강암은 편마암과 퇴적암에 비해 물리적·화학적 강도가 가장 강하지만 다른 암석과 달리 지구조적 요인으로 형성되는 구조선이나 절리와 같은 균열이 암석 내부 깊숙이 발달하는 특성이 있다. 모든 암석의 풍화는 수분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절리나 균열은 이런 수분의 이동통로 구실을 한다.
암석 내부 깊숙이 발달한 절리가 있다면 암석의 풍화는 매우 빠르게 진행된다. 따라서 화강암은 지구조적 요인을 비롯한 다양한 균열들의 발달 여부에 따라 금강산·설악산·속리산처럼 거대한 암석이 산체를 이루는 돌산이 되거나, 춘천분지·대전분지·악양분지와 같은 낮은 분지가 되는 등 극단적인 지형으로 나타난다. 즉 구조선의 발달 여부가 매우 중요하다.
하동군에서 이런 지구조적 요인의 간섭이 가장 미약하게 나타나는 곳은 하동포구에서 하동읍성이 있는 양경산과 이명산을 잇는 가상의 선 아래쪽 해안 지역이다. 하동군 남부 해안 지역은 대부분 퇴적암으로 이루어졌으며, 이 사이에 화강 섬록암이 관입되어 발달한 것이 금오산이다. 금오산은 큰 구조선 발달이 거의 없고 국지적인 절리나 균열 발달만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돌산의 모습을 이루고 있다.
금오산은 말굽 모양의 능선이 둘러있고, 전망이 매우 좋아 지리산과 다도해, 하동화력발전소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북쪽 하동군 진교면 안심리에 있는 태봉(胎峰)은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의 태지(胎址)가 있었다고 전해 오며, 동쪽 산기슭에 자리 잡은 금남면 중평리 당사동에는 충의공(忠毅公) 정기룡(鄭起龍) 장군의 태지가 있다. 산행의 시작은 보통 중평리 청소년 수련원에서 시작하는데, 중평리에는 정기룡(鄭起龍) 장군의 사당인 경충사(景忠祠)와 정기룡 장군 유허지도 있어 산행 시 들러볼 수 있다. 또한 금오산에는 고려 때 왜구를 막기 위해 축성했다는 금오산성, 하동 금오산 봉수대 및 고려 시대 불상인 하동 금오산 마애불이 있다.
참고문헌
『하동군지』(하동군지편찬위원회, 1996)
『경남의 산』(베스트북, 2011)
부산일보(http://news20.busan.com/)
사람과 산(http://mountainkorea.com/)
하동군청(http://www.hadong.go.kr/)
하동 문화관광(http://tour.hadong.go.kr/)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정보시스템(http://geoinfo.kigam.re.kr)
한국의 산천(http://www.koreasan.com)
다녀간 하동 금오산 지도 원본 지도 (손모양 아이콘을 누르면 대대손손 복받으십니다 *^^*)
대송리 안내판 입구
산행 시작
AM 10:51
본격적인 등산로 입구
AM 11:08
하동 금오산 마애불
크기: 전체 높이 193cm, 불상높이 110cm, 신광 85cm, 두광 31cm
하동 금오산 마애불은 남해대교 북쪽 금오산[850m] 정상에서 서남쪽 800m 지점 너럭바위 지대의 거대한 ㄱ자형 암벽에 선각(線刻)한 마애불좌상(磨崖佛坐像)이다. 부분적으로 훼손되었지만 전체적인 윤곽이 잘 드러나 있다. 부처의 상호(相好)는 타원형으로 풍만하지만 손상으로 인해 자세한 표정을 알 수 없으며, 목에 삼도(三道)[불상의 목에 가로로 표현된 세 줄기 주름]가 표현되어 있다. 1993년 1월 8일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290호로 지정되었다 높이가 110㎝로, 상현좌(裳懸座)[불상의 옷 주름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대좌]처럼 보이는 대좌에 결가부좌한 채 하늘을 나는 형상을 하고 있다. 법의는 통견으로 윤곽이 뚜렷하지 않다. 광배는 원형의 거신광으로, 안에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을 표현했지만 아무런 무늬가 없다. 수인은 정확하지 않지만 지권인을 취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은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고유한 손 모양이다. 비로자나불은 대일여래라고도 부르는데, 부처의 진리가 태양빛처럼 우주에 가득 비치는 것을 형상화한 것으로 진리 자체를 상징하는 『화엄경(華嚴經)』의 중심 불상이라고 한다. 불상 옆에 선각한 구층 석탑이 있어 특이하다 고려 후기 불교 신앙생활을 엿볼 수 있는 주요한 문화유산으로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참고문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경남문화재대관』-도지정편(경상남도, 1995)
『하동군지』(하동군지편찬위원회, 1996)
『하동의 문화유적』(하동문화원, 1997)
『금남면지』(금남면지편찬위원회, 2004)
문화재청(www.cha.go.kr)
금오산(소오산) 849M
PM 12:32
금오산 정상석 옆 헬기장
해맞이공원
2005년에 조성한 960㎡의 넓은 전망대로, 목재를 이용해 바닥과 난간을 만들었다. 전망대에 서면 남해와 여수 바다 그리고 섬들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특히 섬 사이로 솟아오르는 일출이 장관이다. 금오산 정상은 오랫동안 군사시설이 점유하던 곳으로, 일반인들에게 출입이 허용된 것은 1993년부터였다
미륵당
석굴암
PM 01:01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중평리에 대한불교 천태종 소속의 사찰.
금오산 너덜겅에 돌을 쌓아 만든 사찰로, 일명 ‘돌절’이라고 불리는 암자이다. 석굴암에서 내려다보면 한려수도(閑麗水道)의 아름다운 정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건립 경위 및 변천]
고려 말 1149년(의종 3)에 하동 금오산 봉수대를 축조할 때 그 당시 봉화군(烽火軍)이 기거하는 곳으로 축성되었다고 전해진다. 이곳 봉수대는 충무공 이순신이 순직한 노량진(露梁津) 앞바다로부터 10㎞ 떨어진 곳에 있으며, 991.74㎡[300평] 규모의 봉수대로 축성 형태가 잘 보존되어 있다. 봉화군이 썼을 것으로 추정되는 맷돌이 있는데 옆 부분에 ‘순치(順治) 17년’[1651년]이라는 음각이 새겨져 있다. 하동 금오산 봉수대가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기 전인 1987년경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에 사는 노무속인(老巫俗人)이 이곳 석굴에 불상을 모셔 놓고 불공을 드렸으며, 이름을 석굴암(石窟庵)이라 하였다.
[현황]
주불인 석불과 산신각, 요사채가 있다. 현재는 덕암(德岩)이 주지로 있다.
[관련 문화재]
석굴암 경내에 1993년 1월 12일 경상남도 기념물 제122호로 지정된 하동 금오산 봉수대(河東金鰲山烽燧臺)가 있다.
[참고문헌]
『하동군지』(하동군지편찬위원회, 1996)
『금남면지』(금남면지편찬위원회, 2004)
산신각
불당
하동 금오산 봉수대 (河東金鰲山熢燧臺)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중평리에 있는 고려 전기의 봉수대
[건립경위]
건립과 관련된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고려 시대인 1149년(의종 3)에 외적의 방어를 위하여 축성된 것으로 추정한다. 왜적의 침입이 잦았던 고려 말에 특히 큰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하동군 금남면 노량리의 연대 봉수대에서 올리는 봉화를 정안봉 봉수를 거쳐 지리산[1,915m]에 있는 봉수대까지 전달한 것으로 추정한다. 『만기요람(萬機要覽)』 봉수 편에 의하면, 하동 금오산 봉수대(河東金鰲山烽燧臺)에 오장 2명과 군졸 10명이 2교대 하며 봉수대 부근에 거주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위치]
높이 849m의 금오산 8부 능선에 위치한다. 금오산은 남해안 한려 수도가 정면에 보이는 전략상 군사 요충지이다. 전라도의 순천 방답진 백야곶이 충청도를 거쳐 양주 화개산에 이르는 봉수대에 속하는 것으로 우측에는 여수, 좌측에는 통영이 바라보이는 중간 지점에 자리한다.
[형태]
992㎡[300평]에 달하는 하동 금오산 봉수대는 산성의 축성 형태가 양호하게 남아 있는 편이다. 둘레 200m 정도의 석축이 남아 있고, 봉수대가 있었던 곳에는 봉수군이 머물던 곳으로 보이는 석굴이 있다. 석굴은 높이 3m, 가로 3m, 둘레 2m로 그 위를 큰 돌로 막은 듯하다. 남아 있는 봉돈은 길이 2m, 폭 1.5m의 타원형으로 봉수대의 아래쪽에서 봉화할 수 있도록 하였다.
[현황]
2011년 현재 하동 금오산 봉수대는 개인 소유로 하동군이 관리하고 있다. 1993년 1월 8일 경상남도 기념물 제122호로 지정되었다. 주변에는 봉수군이 쓰던 맷돌이 있는데 옆 부분에 ‘순치 17년(1660)’이라는 음각이 새겨져 있다. 봉수군이 휴식하였던 곳으로 추정되는 석굴 등은 있으나, 석축한 봉수대는 붕괴되어 원래의 규모와 형태를 추정하기는 어렵다. 석굴은 현재 부처를 모신 불당으로 남아 있다.
[참고문헌]
『하동군지』(하동군지편찬위원회, 1996)
『문화유적분포지도』-하동군(하동군·대구한의대학교 박물관, 2006)
『하동군의 인문지리변천사』(하동군, 2009)
[출처]
디지털하동문화대전
약사암
PM 02:00
약사암 해수관음보살상
정기룡 장군 유허지 (鄭起龍將軍遺虛地)
PM 02:11
[개설]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중평리(仲坪里) 당사곡(堂沙谷)과 중방동(衆芳洞) 등 일대는 매헌(梅軒) 정기룡[1562~1622] 장군이 태어난 곳이자, 무과에 급제하기까지의 청소년 시절에 학문을 닦고 무예를 연마한 곳이다. 정기룡 장군은 임진왜란 때 상주성 싸움에서 공을 세웠으며, 정유재란 때 경상우도병마절도사로서 왜군을 격퇴하였다. 시호는 충의(忠毅)이다.
[변천]
정기룡 장군 유허지에는 정기룡 장군의 구국제민(救國濟民)의 공적을 추모하고자 지역 유림이 경충사(景忠祠)를 세워 향사를 모시고 있다. 금남면 대치리의 정희협(鄭禧協)·정해영(鄭海榮)·정낙영(鄭洛榮)·정재완(鄭在浣)·정광진(鄭光鎭)·정정섭(鄭貞燮), 진교면의 이병호(李炳鎬)·정동규(鄭東圭), 양보면 장암리의 정환상(鄭煥庠) 등이 1931년 발기하여 모충계(慕忠契)를 창설한 이듬해인 1932년 봄에 경충당(景忠堂)만 건립하였는데, 일제의 방해와 협박으로 사업이 중단되었다.
8·15 해방 후 1951년 가을에 강달수(姜達秀)·권영집(權寧執)·정희조(鄭禧祚) 및 지역민의 노고와 협조로 경충당유지위원회를 발기하고 향례의 준비를 갖추었다. 1966년 위패를 봉안하고 첫 향사를 봉행하였다. 1968년 문교부의 지원과 1969년 하동군의 지원을 받아 정문·내문·사우 등을 새로 건축하고 위패를 옮겨 모셨다.
1983년 전상수(全相秀)·정한효(鄭漢孝)의 주도로 경충사정화위원회를 구성하여 사우 내외의 정화 정비 사업을 추진하였으며, 1984년 신도비(神道碑)를 세웠다. 비문은 삭령(朔寧) 최인찬(崔寅巑)이 지었다. 1989년 경충사기념관이 준공되었으며, 1991년 12월 23일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188호로 지정되었다.
[현황]
현재 정기룡 장군 유허지에는 생가 터와 경충사가 있다. 생가 터 면적은 105㎡, 사당 면적은 1,600㎡이다. 기념관에는 정기룡 장군의 유물 3점이 보관되어 있는데, 관직 임명과 관련된 고문서 2점과 정기룡 장군이 직접 사용하였던 장검 1점이 있다.
[참고문헌]
『금남면지』(금남면지편찬위원회, 2004)
정기룡
1562년(명종 17) ~ 1622년(광해군 14)
초명은 무수(茂壽).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경운(景雲), 호는 매헌(梅軒). 곤양 출신. 증 호조참판 철석(哲碩)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증 호조판서 의걸(義傑)이고, 아버지는 증 좌찬성 호(浩)이다.
1580년(선조 13) 고성에서 향시에 합격하고, 1586년 무과에 급제한 뒤 왕명에 따라 기룡으로 이름을 고쳤다. 1590년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신립(申砬)의 휘하에 들어가고 다음해 훈련원봉사가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별장으로 승진해 경상우도방어사 조경(趙儆)의 휘하에서 종군하면서 방어의 계책을 제시하였다. 또한 거창싸움에서 왜군 500여명을 격파하고, 김산(金山)싸움에서 포로가 된 조경을 구출했고, 곤양 수성장(守城將)이 되어 왜군의 호남 진출을 막았다.
이어 유병별장(游兵別將)이 지내고, 상주목사 김해(金澥)의 요청으로 상주판관이 되어 왜군과 대치, 격전 끝에 물리치고 상주성을 탈환하였다. 1593년 전공으로 회령부사에 승진하고, 이듬해 상주목사가 되어 통정대부에 올랐다.
1597년 정유재란 때에는 토왜대장(討倭大將)으로서 고령에서 왜군을 대파하고, 적장을 생포하는 등 큰 전과를 올렸다. 이어 성주·합천·초계·의령 등 여러 성을 탈환하고 절충장군으로 경상우도병마절도사에 승진해 경주·울산을 수복하였다.
1598년 명나라 군대의 총병(摠兵)직을 대행해 경상도 방면에 있던 왜군의 잔적을 소탕해 용양위부호군(龍驤衛副護軍)에 오르고, 이듬해 다시 경상우도병마절도사가 되었다.
1601년 임진왜란이 끝난 뒤 다시 경상도방어사로 나가 다시 침입해올지 모르는 왜군에 대처했고, 다음 해 김해부사·밀양부사·중도방어사(中道防禦使)를 역임하였다. 그 뒤 용양위부호군 겸 오위도총부총관^경상좌도병마절도사 겸 울산부사를 지냈다.
1610년(광해군 2) 상호군에 승진하고, 그 뒤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로서 삼도수군통제사 겸 경상우도수군절도사의 직을 맡다가 1622년 통영 진중에서 죽었다. 상주 충렬사(忠烈祠)에 제향되었고, 시호는 충의(忠毅)이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위패
하동 청소년수련원 주차장
산행 종료
PM 02:21
광양 매화마을로 이동
광양 매화마을
PM 03:45
전라남도 광양시 다압면 도사리에 있는 마을로 '섬진마을'이라고도 부른다. 섬진강에 인접한 백운산 자락에 대규모 매화단지가 조성되어 해마다 3월이면 매화꽃이 만발하며 광양매화문화축제가 열리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곳 매화나무는 1930년경 청매실농원 주인 김오천에 의해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집단 재배가 시작되었으며, 현재 대표인 며느리 홍쌍리가 매화나무의 수를 늘리고 품종을 개량하고 있다. 16만 5000㎡ 면적의 청매실농원에는 매실과 장 종류를 저장하는 2,000여개의 옹기 항아리가 있으며, 다양한 매실 제품과 매화나무 묘목들 판매한다.
섬진강변 백운산 자락의 약 33만㎡ 지역에 군락을 이룬 매화단지는 전국에서 매화 경치로는 으뜸으로 칠 정도로 아름다워서 《취화선》, 《다모》 등 드라마나 영화의 배경 장소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축제행사는 '율산 김오천 추모제'를 시작으로 문인시화전, 전국매화사진촬영대회, 국악한마당, 매화가요제, 매화백일장 및 사생대회 등이 벌어진다. 축제기간 동안 섬진나루터, 청매실농원, 섬진강 재첩잡이 풍경을 즐길 수 있으며, 인근의 백계산 옥룡사지 동백림을 둘러보거나 백운산 등산을 연계하는 여행도 가능하다.
대전으로 출발
PM 04:30
대전IC
PM 07:20
롯데 하차
PM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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