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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100대 명산

소요산 (경기 동두천) 587M 2012.04.07

by [대전]풀때기 2012.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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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동두천 소요산[逍遙山] 587M 2012.04.07 

 

산행날짜: 2012.04.07 (토)

 

산행코스: 홍덕문 추모비 -> 팔각정 -> 하백운대 -> 중백운대 -> 상백운대 -> 칼바위 -> 나한대 -> 의상대 -> 공주봉

               -> 구절터 -> 원효폭포,원효굴 -> 자재암 ->소요산 관리소 -> 주차장

  

산행거리: ??km 내외

 

산행시간: 3시간 45분 (AM 10:06 -> PM 01:51)

산행속도: 보통

산행난이도: 하

산행날씨: 맑음

 

  

소요된 음료: 생수 1000ml

 

참가자: 풀때기 포함 충일 산악회 80명 내외 (관광버스 2대)

 

회비: 23,000원 

  

 

산행일정

 

대전IC 출발    AM 07:00 

홍덕문 추모비 AM 10:06

팔각정           AM 10:16

하백운대        AM 10:55

중백운대        AM 11:03

상백운대        AM 11:11

칼바위           AM 11:18

나한대           AM 11:40

의상대           AM 11:50

공주봉           PM 12:20

구절터           PM 12:59

원효폭포        PM 01:08

원효굴           PM 01:09

해탈문           PM 01:12

자재암           PM 01:18

소요산 관리소 PM 01:42

주차장           PM 01:51

대전으로 출발 PM 02:15

대전IC 도착    PM 05:34

 

 

 

경기 동두천 소요산[逍遙山]

 

 

 

 

정의

경기도 동두천시와 포천시 신북면에 걸쳐 있는 산.

 

개요

소요산의 높이는 587m이고, 산세가 웅장하지는 않으나 석영반암의 대암맥이 산능선에 병풍처럼 노출되어 성벽을 이루고 있는듯하며, 경기소금강(京畿小金剛)이라고 할 만큼 경승지이다. 동두천역에서 약 4㎞ 떨어져 있는데, 소요산 하면 진달래·단풍·두견과 폭포를 연상할 만큼 꽃과 단풍으로 알려진 산이다.

 

명칭 유래

974년(광종 25)에 소요산이라 부르게 되었는데, 서화담 양달래와 매월당이 자주 소요하였다고 하여 소요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자연환경

소요산의 입구에 청량폭포(淸凉瀑布) 및 원효폭포가 있는데, 청량폭포가 있는 곳을 하백운대(下白雲臺)라 하고 그 위쪽의 원효폭포가 있는 곳을 중백운대라고 한다. 원효폭포 주변에는 방음봉·이필봉·약수봉 등의 봉우리들이 솟아 있다.

중백운대에는 신라시대에 원효가 세운 자재암(自在庵)이 있고, 다시 그 위쪽으로 나한대·의상대 등을 거쳐 30m 돌층계를 오르면 원효대에 닿는데 이 곳을 상백운대라고 부른다. 산의 정상에서 보면 북쪽으로는 한탄강이, 남쪽으로는 서울방면의 산맥이 굽이쳐 전망이 매우 좋다.

 

현황

소요산은 수려한 자연경관과 수많은 전설이 많은 명승지를 품고 있다. 처음 계곡을 오르면 원효폭포가 있는데 이곳이 하백운대다. 그 오른쪽에 원효대사가 앉아 고행을 했다는 원효대가 있으며, 이를 지나면 백운암(白雲庵)이 있다. 백운암을 지나 오르면 소요교가 있고 이를 건너면 자재암(自在庵)이 나타난다. 그 앞에 청량폭포는 중백운대이고 이곳에는 옥로봉, 관음봉, 이필봉 등 기묘한 봉우리들이 있다. 옥로봉을 넘어서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나한대와 의상대가 있는데 이곳이 상백운대이다.

또한 소요산에서 봄에는 철쭉축제가 열리고, 가을에는 단풍축제가 열려서 서울·경기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적인 문화행사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참고문헌

『동두천시사(東豆川市史) 상(上)』(동두천시사편찬위원회, 1998)
『한국지명요람(韓國地名要覽)』(건설부국립지리원, 1982)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2009, 한국학중앙연구원

 

 

다녀간 소요산 지도

 

 

 

 

 

 

 

원본 지도

 

 

(손모양 아이콘을 누르면 대대손손 복 받으십니다 *^^*)

 

 

소요산 입구 홍덕문 추모비 바로 옆 하차

 

산행 시작

 

AM 10:06

 

 

 

 

홍덕문 추모비

 

홍덕문은 한말애국지사. 휘는 병준(秉俊)이며, 본관남양이다. 1919년 3·1만세 운동이 일어나자 음력 2월 25일(동두천 장날) 정오에 1천여 명의 군중을 이끌고 선두에 서서 만세시위를 전개했다. 그 후 일본 헌병에게 체포되어 갖은 고문을 당했으나 조금도 굴하지 않고 조선의 독립을 주장했다. 출옥한 후에는 일본 헌병이 가한 형독으로 인하여 수년 후 향리인 걸산동에서 세상을 떠났다. 1975년시민의 성금을 모아 소요산 입구에 추모비를 세웠다. 화강암으로 된 비신의 앞면에는 애국지사 홍덕문 추모비라고 음각했고, 뒷면에는 선생의 행적을 새겼다.

 

 

 


 

 

 

 

 

 

 

 

 

 

 

 

 

 

 

 

 

 

 

 

 

 

 

 

 

 

 

 

 

 

 

 

 

팔각정

 

AM 10:16

 

 

 

 

 

 

 

 

 

 

 

 

 

 

 

 

 

 

 

 

 

 

 

 

 

 

 

 

 

하백운대 440M

 

AM 10:55

 

 

 

 

 

 

 

 

 

 

 

 

 

 

 

 

 

 

 

 

 

 

 

 

 

 

 

 

 

중백운대

 

AM 11:03

 

 

 

 

 

상백운대 560.5M

 

AM 11:11

 

 

 

 

 

상백운대 정상

 

 

 

 

 

 

 

 

 

 

 

 

 

 

 

칼바위 능선

 

 

 

 

 

 

 

칼바위 정상 조망

 

AM 11:18

 

 

 

 

 

 

 

 

 

 

 

 

 

 

 

 

 

 

 

 

 

 

 

 

 

 

 

 

 

 

 

 

 

 

 

 

 

 

 

 

 

 

 

 

 

 

 

 

 

 

 

 

 

 

 

 

 

 

 

 

 

나한대(臺) 571M

 

AM 11:40

 

 

 

 

 

 

 

 

 

 

 

 

 

 

 

 

 

 

 

 

 

 

 

 

 

 

 

 

 

 

 

 

 

 

 

 

 

 

 

 

 

 

 

 

 

 

 

 

 

 

 

 

 

 

 

 

 

 

 

 

 

 

 

 

 

 

 

 

 

 

 

 

 

 

 

 

 

의상대 587M

 

소요산의 정상

 

AM 11:50

 

 

 

충일산악회 선두팀

 

 

 

 

 

 

 

 

 

 

 

 

 

 

 

 

 

 

 

 

 

 

 

 

 

 

 

 

 

 

 

 

 

 

 

 

 

 

 

 

 

 

 

 

 

 

 

 

 

 

 

 

 

 

 

 

 

 

 

 

 

 

 

 

 

 

 

 

 

 

 

 

 

 

 

 

 

 

갈림길마다 충일산악회 시그널을 바닥에 깔아놓아 뒤따라 오는 충일산악회 회원들이 길을 헤매이지 않고 올바른 길로 갈수있게 인도하는 에너지님

 

 

 

 

 

 

 

 

 

 

 

 

 

 

공주봉

 

PM 12:20

 

원효()가 요석공주()를 위해 봉우리 이름을 공주봉이라고 지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공주봉에서 바라보는 조망

 

 

 

 

 

 

 

 

 

 

 

 

 

 

 

 

 

 

 

 

 

 

 

 

 

 

 

 

 

 

 

 

 

 

 

 

 

 

 

 

 

 

 

 

 

 

 

 

 

 

 

 

 

 

 

구절터

 

PM 12:59

 

이름 그대로 옛날 이곳에 절이 있었다.

 

 

 

 

 

 

 

 

 

 

 

 

 

 

 

 

 

 

 

 

 

 

 

 

 

 

 

속리교

 

속세와의 인연을 끊는 다리다.

 

 

 

 

 

 

 

 

 

 

 

 

원효폭포

 

PM 01:08

 

 

 

 

 

 

 

 

 

 

 

 

 

 

 

 

 

 

 

 

 

 

 

 

 

 

 

 

 

원효굴

 

 

 

 

 

 

 

 

 

 

 

 

 

 

 

백팔계단

 

불교에서 중생의 번뇌를 108가지로 분류한 것. 원래 108이란 많다는 뜻으로 쓰여졌던 숫자이다.

 

불교의 교리 발달과 함께 백팔번뇌의 산출법이 뚜렷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 백팔번뇌의 산출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우리 나라에서는 두 가지 설이 널리 채택되고 있다.첫째는 눈·귀·코·혀·피부·뜻의 육근(六根)과 이 육근의 대상이 되는 색깔·소리·냄새·맛·감각·법(法)의 육진(六塵)이 서로 작용하여 일어나는 갖가지 번뇌에 대한 산출법이다.육근이 육진을 접촉할 때 각각 좋고[好], 나쁘고[惡], 좋지도 싫지도 않은[平等] 세 가지 인식작용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곧 3×6=18의 십팔번뇌가 된다. 또, 이 호·오·평등에 의거하여 즐겁고 기쁜 마음이 생기거나[樂受], 괴롭고 언짢은 마음이 생기거나[苦受],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상태[捨受]가 생기기도 한다.이 고·낙·사수의 삼수(三受)를 육근과 육진 관계에서 생겨나는 육식(六識)에 곱하면 역시 십팔번뇌가 성립된다. 이와 같은 36종의 번뇌에 전생·금생·내생의 3세를 곱하면 108이 되어 백팔번뇌의 실수를 얻게 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풀이이다.

 

두번째의 산출법은 보다 깊은 교리적인 해설이 요구된다. 이 산출법은 어떻게 수행을 해서 번뇌를 원천적으로 제거할 것인가 하는 수행 실천의 문제를 잘 풀이해 주고 있다. 이것은 사고의 영역에 속하는 번뇌요, 실천의 영역에 속하는 번뇌를 근거로 하는 산출법이다.곧, 견혹(見惑)인 88사(使) 번뇌와 수혹(修惑)인 10혹(惑) 번뇌에는 십전(十纏)의 번뇌를 더하여 얻는 백팔번뇌설이다. 견혹이란 사고·지식·인식 작용에 바탕을 둔 번뇌를 뜻한다.여기서의 견(見)은 지혜로 얻은 지식 내용을 뜻하며, 혹은 번뇌의 다른 이름으로서 지혜로 제거할 수 있는 번뇌, 올바른 지혜를 가로막는 번뇌란 뜻으로 지어진 이름이다.

다시 말하면, 지금 가지고 있는 소견이 잘못된 것인 줄만 깨달으면 곧 없어지는 번뇌이며, 보기만 바로 보면 곧 해탈된다는 뜻을 가진 번뇌이므로 ‘견도소단혹(見道所斷惑)’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사혹은 정서적·의지적·충동적 번뇌로서, 그 번뇌의 성질이나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곧 바뀌어지지 않는 번뇌이다. 돈이나 명예나 이성에 대한 탐욕이 바람직하지 못한 줄도 알고 있고, 시기·질투가 나쁜 줄 알면서도 아는 것과는 달리 그러한 심리작용이나 습관이 일시에 제거되지 않는 것과 같다.그러므로 표면상으로는 견혹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반면, 사혹은 정신의 이면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내재하여 인간의 생을 이끌어가는 번뇌로서 좀처럼 끊어지지 않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거울의 때를 닦고 칼을 숫돌에 갈듯이 점차로 끊어야 한다는 뜻에서 사혹을 ‘수도소단혹(修道所斷惑)’이라고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이 견혹의 88가지에 사혹의 10가지를 합해 98가지가 되고, 여기에 탐심과 진심(瞋心)과 치심(癡心)의 근본 번뇌에서 일어나는 10가지 부수적인 번뇌를 더하여 백팔번뇌가 되는 것이다.

 

참고문헌

백팔번뇌(性眞, 佛敎思想 5, 1984)

 

 

해탈문

 

PM 01:12

 

해탈문은 108계단 위에 세워졌고 불교의 윤회를 형상화한 4조각의 나무로 구성됐다. 108 번뇌를 의미하는 108계단을 올라온 뒤 속세의 수많은 번뇌를 벗고 해탈의 경지에 이른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2011년 5월 설치

 

원효대

 

원효대사가 원효대에 좌정하고 고행수도 하였으나 도를 얻지 못해 투신자살하려는 순간에 이르러 도를 통할수 있었다는 전설이 있다.

 

 

 

 

 

 

 

 

 

 

 

 

 

 

 

 

 

 

 

 

 

 

 

 

 

 

 

 

 

 

 

 

 

 

 

추담선사 부도탑

 

PM 01:15

 

대한불교조계종원로스님 박추담(朴秋潭)대종사의 부도탑 1978년 11월 26일 입적(入寂)

 

 

 

스님들이 공부하는 백운암

 

출입금지 구역

 

 

 

 

 

자재암[自在庵]

 

PM 01:18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奉先寺)의 말사이다.

 

654년(무열왕 1) 원효(元曉)가 창건하여 자재암이라고 하였으며, 974년(광종 25) 각규(覺圭)가 태상왕의 명으로 중창하였다.

1153년(의종 7) 화재로 소실된 것을 각령(覺玲)이 대웅전과 요사채만을 복구하여 폐사와 다름없이 명맥만 이어 오다가, 1872년(고종 9) 원공(元空)과 제암(濟庵)이 중창하여 영원사(靈源寺)라고 하였다. 그때의 당우로는 영산전(靈山殿)ㆍ만월보전(滿月寶殿)ㆍ독성각(獨聖閣)ㆍ산신각(山神閣)ㆍ별원(別院) 등이 있었다고 한다.

1907년 화재로 인하여 만월보전을 제외한 모든 당우가 소실되자 1909년 성파(性坡)와 제암이 절을 중창하고 다시 자재암이라 하였다. 이때에는 전각(殿閣)뿐 아니라 약사여래상과 지장보살상ㆍ관음보살상 등의 불상과 함께 이 절의 유래와 깊은 관련이 있는 원효ㆍ의상(義湘)ㆍ윤필(尹弼) 등의 화상(畵像)을 그려서 봉안하였다.

6ㆍ25전쟁 때 다시 소실되었으나, 1961년 진정(眞靜)이 대웅전을, 1968년 성각(性覺)이 요사채를, 1977년 법조(法照)가 삼성각(三聖閣)을 각각 지어 현재의 당우를 완성하였다.

 

자재암에는 여러 전설적 설화가 전한다. 『조선지지(朝鮮地誌)』에는 이곳에 요석궁(瑤石宮)의 옛터가 있다고 하였다. 요석궁은 원효가 요석공주(瑤石公主)와 관계를 가졌던 곳이며, 나중에 원효가 이곳에서 설총(薛聰)을 길렀다고 한다.

자재암이라는 사명(寺名)을 갖게 된 것은, 원효가 요석공주와 관계를 가진 뒤 관음보살이 변신한 아리따운 여인의 유혹을 설법을 통해서 물리친 후, 다음날 관음의 진신을 친견하고 무애자재인(無碍自在人)을 상징하며 자재암이라고 했다고 한다.

절 근처에는 조선 태조가 즐겨 찾았던 백운대(白雲臺)와 폐정(廢井)이 있고, 백운대 밑에 있는 폭포는 원효가 노닐던 곳이라고 하여 원효대(元曉臺)라고 하는데, 옛날 이곳에는 소요사(逍遙寺)라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 또한, 제암과 원공이 서로 다른 꿈을 꾸고 우연히 만나서 절을 중창했다는 영험담도 전해지고 있다.

 

참고문헌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봉선사본말사지(奉先寺本末寺誌)』
『명산고찰(名山古刹)따라』(이고운·박설산, 신문출판사, 1987)
『한국사찰전서(韓國寺刹全書)』(권상로 편, 동국대학교출판부, 1979)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2010, 한국학중앙연구원

 

 

 

 

 

 

 

 

 

반야바라밀다심경약소()

 

1464년(세조 10)에 간경도감에서 간행한 당나라 현장(玄奘)이 번역한 『반야바라밀다심경』에 대한 주석서(註釋書)이다

 

보물 제1211호 : 1권 1책. 목판본. 권말에 있는 한계희의 발에 의하면 고승의 도움을 받아 현정기의 내용을 교정하고 효령대군과 함께 국역하여 간경도감에서 간행한 것이다. 권수에 금강경심경전(金剛經心經箋)이 붙어 있어 이때 금강경과 함께 간행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판본은 현재 보물 제771호로 지정된 규장각 도서 소장본과 동일한 책이나 이 곳에 없는 금강경심경전(金剛經心經箋)이 붙어 있고 교정인이 찍혀 있으며 보존상태도 보다 양호하다. 경기도 동두천시 자재암에 소장되어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2010, 한국학중앙연구원

 

 

나한전 [羅漢殿] 

 

부처님의 제자인 나한을 모신 법당이다. 나한은 아라한()의 약칭으로 그 뜻은 성자()이다. 아라한은 공양을 받을 자격[]을 갖추고 진리로 사람들을 충분히 이끌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므로, 나한전을 응진전(殿)이라고도 한다.

부처에게는 16명의 뛰어난 제자들이 있어 이들을 16나한이라 한다. 때문에 나한전에는 석가모니를 주존으로 좌우에 아난()과 가섭()이 봉안되어 있으며, 그 좌우로 16나한이 자유자재한 형상으로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끝부분에 범천과 제석천을 함께 봉안하는 것이 나한전의 가장 일반적인 형태이다.

16나한은 후불 탱화로 그려 봉안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 경우에는 불단에 나한상이 없다. 후불 탱화에는 16나한도 이외에 영산회상도 역시 많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5백나한을 모신 곳도 있는데, 이것은 부처가 열반한 후 가섭이 부처가 생존했을 때의 설법 내용을 정리하기 위해 회의를 소집했을 때 모인 비구가 5백 명인 데서 비롯된다.

나한전은 대웅전과 달리 좁은 폭의 불단을 ㄷ자형으로 배치하여 부처와 나한을 차례로 봉안하고, 깨달음의 정도가 낮은 나한을 주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불단을 장식하지도 않고 절집을 장엄하지도 않는다. 위치도 주불전에서 떨어진 자리에 두고, 건물의 외양도 주불전보다 격이 낮게 한다. 

 

 

나한전 내부

 

 

 

 

 

 

 

원효샘

 

물맛이 달아 삼월 삼짓날이면 이물로 마음을 닦고자 하는 이들이 줄을 선다고한다.

원효샘은 바위틈에서 스며나오는 석간수로 물맛이 달면서도 그 성품이 맑아 오랜세월 다인들에 사랑을 받아왔다.그 인연으로 자재암은 차문화 유적지로 꼽히고 있다.

 

 

 

 

 

 

 

 

 

 

대웅전

 

협시불인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시고 있다.

 

 

 

 

 

 

 

 

 

 

 

 

 

 

 

 

 

 

 

 

 

소요산 관리소

 

PM 01:42

 

 

 

 

 

입장료 어른 1000원

 

카드결제는 안되며 동두천 시민은 무료입장이다

 

 

 

 

 

 

 

 

 

 

 

 

 

요석공주별궁지 [瑤石公主別宮址] 

 

신라 제29대 태종무열왕의 차녀인 요석공주()는 원효대사와 인연을 맺어 설총(을 낳았다 한다. 요석공주는 소요산에 초막을 짓고 수행하던 원효대사를 따라 와 수행처 근처에 별궁을 짓고 설총과 함께 기거하며 아침저녁으로 원효가 있는 곳을 향해 절을 올렸다 하는데 소요산 관리사무소(매표소) 동쪽 약 20m 지점에 한자로 ‘요석공주별궁지’라고 쓰인 작은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하지만 표지석이 있는 자리가 정확한 별궁지는 아니다. <조선지지 >에는 ‘바위골짜기 평평한 터에 두 군데의 옛 궁터가 있다. 예로부터 전해오기를 요석공주의 궁터라 한다’는 기록이 있고, 미수 허목(, 1595~1682)이 쓴 <소요산기>에는 요석공주 궁지는 ‘원효폭포에서 서북쪽 80장에 있다’라고 되어 있다.

 

 

 

 

 

 

 

 

 

 

주차장

 

산행종료

PM 01:51 

 

 

대전으로 출발

PM 02:15

 

 

대전IC 도착

PM 0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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