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옥천 용암사(龍巖寺)
용암사 주소: 충북 옥천군 옥천읍 삼청리 산 51-4
네비게이션 찾아가는 주소: 충북 옥천군 옥천읍 삼청리 613-2 (아스팔트 포장된 산길을 따라 쭈욱 올라감)
참가자: 풀때기 , 풀때기 +1
충북 옥천 용암사
충청북도 옥천군 장용산에 있는 절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法住寺)의 말사이다. 천축국(天竺國)에 갔다가 귀국한 의신조사(義信祖師)가 552년(진흥왕 13)에 창건하였으며, 법주사의 창건보다 1년이 앞선다.
사찰명은 경내에 용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서 용암사로 이름 지었으나, 민족 항일기 때 일본인의 손에 용바위는 파괴되어 현재에는 그 흔적만이 남아 있다. 그러나 중창 역사는 거의 전해지지 않고 있다. 다만, 신라 말 마의태자(麻衣太子)가 금강산으로 가던 길에 잠시 머물러 용바위 위에 서서 신라의 서울이 있는 남쪽 하늘을 보며 통곡하였다는 설과, 수많은 당우로 산야를 메웠던 사찰이 임진왜란의 병화로 폐허화되었다는 설만이 전해지고 있다. 그 뒤 이 절은 명맥만을 유지하다가 최근에 대웅전을 비롯한 요사채 3동을 중건하였다. 대웅전 안에는 석가모니불과 5종의 탱화가 봉안되어 있는데, 이 중 화법이 정교한 후불탱화(後佛幀畵)와 1877년(고종 14)에 조성된 신중탱화(神衆幀畵)는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지정문화재로는 쌍석탑(雙石塔)과 마애불이 있다. 충청북도유형문화재 제3호인 쌍석탑은 2층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것으로 고려시대의 작품이며, 높이는 약 4m이다. 충청북도유형문화재 제17호인 마애불은 높이 3m에 고려 중기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사찰에서는 마의태자상이라고 한다. 마의태자를 추모하였던 신라의 공장(工匠) 후손이 염불하는 태자의 모습을 그리워하며 미륵불을 조각하였다고 한다. 이 마애불은 영험이 있어 기도하면 이루어지지 않음이 없다고 전하고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용암사 주차장에 차량주차
용암사
2012년 1월 미국 CNN의 여행전문 사이트 CNN Go에서
한국에서 가봐야 할 아름다운 50선을 선정해 발표하였는데
옥천 용암사가 38위로 선정되었다.
범종각
대웅전 왼편 마당에 위치하고 있다. 범종각은 사물을 걸어 놓고 온 세상의 미물까지 성불할 수 있도록 소리를 내어 도와줄 수 있도록 건립된 건물이다. 용암사 범종각에는 범종을 걸어놓았고 그 외에 목어, 운판, 법고는 보이지 않는다.
평면은 단간의 평면형을 하고 있는데, 범종 하나 만을 걸고 있기 때문에 단간의 평면으로 충분하며 더 넓게 간살이를 하는 것은 오히려 넘치는 모습이 될 것이다. 기단은 화강암을 이용해 만들었는데 기단면에 사용된 화강암의 마감으로 혹두기를 선택했다. 거칠게 다듬은 면을 외부에 노출하는 방법이다. 초석은 근래 조성한 많은 사찰에서 사용하듯이 원형초석에 연꽃이 새겨진 높은 운두를 가진 초석이다. 초석 상부에는 굵은 배흘림기둥을 사용했는데 그 흘림률이 그리 크지 않게 만들어졌으나 기둥의 높이에 비해 두께가 굵게 만들어졌다. 공포는 다포식의 공포를 사용했는데 주간에는 각각 2개의 공간포를 놓아 상부를 지지하고 있다. 처마는 서까래 상부에 부연을 덧댄 겹처마로 이루어졌으며, 지붕은 팔작지붕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범종각 내부에는 범종이 걸려있는데 범종에 부가된 기록에 의하면 이 범종은 1998년에 제작되었다.
출처
전통사찰관광정보 사이트
용왕각
대웅전 왼편에 넓은 마당이 조성되어 있는데 이 마당 한쪽 구석에는 하나의 우물이 만들어져 있다. 이 우물 상부에는 보호각이 만들어져 있는데 이 건물이 용왕각이다.
용왕각을 받치고 있는 축대 및 주위 벽은 자연석을 바른층으로 쌓아 만들었고 지붕은 사모지붕을 하고 있다.
대웅전 내부
용암사의 주불전으로 건립되어 있는 건물이다. 이곳에는 작은 대웅전이 있었으나 1988년에 현재의 모습과 같이 커다랗게 중수하였다.
대웅전 평면은 정면 3간, 측면 3간으로 구성했는데 정면의 어간과 협간의 크기는 동일하게 설정되어 있다.
대웅전은 높은 축대 상부에 건립되어 있는데 축대는 크고 작은 막돌을 이용해 만들었는데 각 돌들이 조화롭게 서로 균형을 이루고 있다. 이 축대에 오를 수 있도록 세 군데에 계단을 만들었다. 곱게 다듬은 화강암을 이용해 만들었는데 각 계단과 계단 사이에는 석등을 한 기씩 배치해 놓았다. 대웅전의 기단 역시 계단과 마찬가지로 잘 다듬은 화강암을 이용해 만들었는데 그 높이가 높지 않은 외벌대이다. 초석 역시 화강암을 다듬어 만들었다. 원형초석으로 운두를 높게 만든 다음 상부에 기둥자리를 만들어 놓았다. 기둥은 원기둥을 사용했는데 흘림을 두지는 않았다. 전면 기둥에는 주련을 걸었고 내용은 다음과 같다.
佛身普遍十方中(불신보변시방중) 부처님의 몸이 온 세상에 두루 계시니
三世如來一切同(삼세여래일체동) 삼세에 부처님이 모두 같도다
廣大願雲恒不盡(광대원운항부진) 광대한 발원구름은 끝이 없고
汪洋覺海渺難窮(왕양각해묘난궁) 망망한 깨달음의 바다 그 뜻 어려워 추구하기 어렵네
공포는 다포식으로 구성했는데 외1출목이며 내부로는 출목을 형성하지 않았다. 다포식의 공포를 구성했으나 살미의 쇠서형태는 조선후기 익공식의 건축물에서 많이 사용하는 형태를 이루고 있다. 처마는 서까래 상부에 부연을 덧댄 겹처마를 이루고 있고 지붕은 팔작지붕의 형태를 하고 있다. 수장의 경우 정면은 모두 창호를 달아 개방했고 좌우측면에는 출입을 할 수 있도록 문을 하나 내었으며, 그 외의 모든 면은 벽체로 구성했다. 창호는 빗살창호로 구성했으며 벽면에는 심우도를 벽화로 그려놓았다.
건물의 내부에 따로 고주는 사용하지 않았다. 불단은 대웅전 배면에 붙여 만들었다. 고주를 없애고 내부 예불공간을 넓게 사용하기 위한 것이다. 불단 상부에는 삼존불을 모셨다. 중앙에 봉안한 불상은 아미타불이다. 1980년 경 이 불상에 대한 복장을 개봉한 일이 있는데 복장유물로 순치(順治) 8년 신묘년에 만들어진 다라니경이 나와 1651년에 만들어진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라니경 전면에는 “刻信暉懷信靈默靈照順治八年辛卯八月 日 慶尙道聞慶地烏井寺重修開板” 이라고 기록되어 있어 경북 문경의 오정사라는 사찰에서 제작된 것을 알 수 있다. 불상의 높이 약 90cm의 높이로 만들어졌는데 결가부좌를 하고 있는 좌상이다. 통견을 하고 있고 머리에는 나발과 육계가 표현되어 있으며 눈은 반쯤 뜨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아미타불의 왼편에는 지장보살이 모셔져 있는데 역시 좌상의 형태로 만들어졌다. 아미타불 오른편에는 관세음보살이 모셔져 있다. 불상 뒤편으로는 후불탱화가 만들어져 있다. 탱화라고 하기 보다는 조각이라는 표현이 더 적당할 듯 하다. 목조로 후불탱화의 모습을 표현했는데 석가모니불, 보살 및 신중을 양각으로 표현한 후 이곳에 금박을 입혀 표현했기 때문에 매우 화려한 모습이다. 불단 상부에는 닫집을 달았는데 보궁형의 닫집이다. 닫집의 공포는 외3출목 정도로 일반적인 닫집에 비해 출목의 수가 적어 화려하지 않은 모습이다.
불단 오른쪽에도 단이 만들어져 있고, 이곳에는 관세음보살도를 모셔놓았다. 또한 불단 왼편에는 칠성단이 마련되었다. 관세음보살도 화기에 의하면 관세음보살도는 1985년에 제작했다고 한다.
대웅전 내부 오른쪽 벽면에는 신중단이 만들어졌다. 화기에 의하면 단기 4288년 즉 1955년에 제작한 탱화이다. 또한 대웅전 내부 왼쪽 벽면에도 단이 만들어져 있는데, 이곳은 영단이다. 영단의 중앙에는 지장보살의 모습을 그린 한 폭의 탱화를 걸었다.
출처
전통사찰관광종합정보
대웅전에서 바라본 조망
단청공사중인 관음전
천불전
용암사 대웅전 왼쪽 뒤편 산 언덕에 커다란 축대를 형성하고 이곳에 천불전을 건립했다. 천불전은 용암사에 건립된 불전들 중 가장 최근에 건립한 불전이다. 평면은 정면 3간, 측면 2간으로 구성했고, 어간과 협간의 폭은 차이를 두지 않고 같은 크기로 설정했다. 내부에 천불을 모시기 위한 불단을 조성하기 위해 배면 기둥 밖으로 감실이 튀어나오도록 조성한 특징이 있다. 기단은 다듬은 화강암을 한단만 쌓은 외벌대로 구성되어 있고, 초석 역시 다듬은 돌을 이용했다. 초석은 운두를 높게 만들었으며 연꽃의 모양을 조각했다. 기둥은 원형기둥을 사용했고 내부에 고주는 사용하지 않았다. 공포는 주심포식의 공포로 구성했다. 출목은 외2출목을 구성하고 있고, 내부로는 출목을 형성하는 대신 보아지 형태로 가공했다. 수덕사 대웅전등에서 확인되는 공포의 모습을 이용해 건물을 건립한 것이다. 처마는 서까래에 부연을 덧단 겹처마로 구성했으며 지붕은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맞배지붕을 하고 있으나 측면에 풍판을 덧대지 않고 가구의 모습을 그대로 노출하고 있다. 창호는 빗살창호를 사용했고, 좌우측면 및 배면에는 석가모니의 일생을 묘사한 팔상도를 벽화로 제작했다. 천불전 내부는 배면을 따라 모두 불단으로 조성하였다. 불단의 중앙에는 삼세불을 봉안했으며 삼세불의 뒤쪽을 포함하여 좌우측 불단에 가득 작은 부처님을 봉안했다. 불단 상부에는 닫집을 달았는데 보궁형의 닫집이다. 특히 삼세불이 위치한 중앙의 닫집은 다른 곳에 비해 화려하게 조성했으며 특히 한 가운데는 중층으로 만들어 화려함을 더하고 있다. 천장은 연등천장을 하고 있으며, 바닥은 우물마루를 하고 있다.
출처 전통사찰관광종합정보 |
천불전 내부
산신각 오르는길
산신각 내부
대웅전 뒤편 거대한 바위로 만들어져 있는 산간에 산신각이 건립되어 있다. 용암사의 산신각이 건립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산신은 원래 불교에서 모시는 신이 아니었으나 불교가 전래된 이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우리 고유의 토속신이 불교와 결합된 모습으로 표출된 예이다.
산신각은 단간의 평면으로 만들어지는 예가 많은데 용암사의 산신각 역시 단간으로 구성했다. 경사가 급격한 대지에 위치한 관계로 축대를 이용해 대지를 조성했고 이 상부에 산신각을 건립했다. 기단은 거칠게 다듬은 화강암을 이용해 아래 한단을 만들고 그 상부에 다듬은 돌을 이용해 또 한단을 구성했다. 결국 2단의 화강암을 이용해 기단을 만든 것이다. 초석 역시 다듬은 돌을 이용했다. 운두를 높게 설정했으며 운두에 조각을 더하지는 않았다. 기둥은 원형기둥을 이용했으며 기둥 상부의 공포는 익공식의 공포를 사용했다. 지붕은 맞배지붕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전면과 배면에는 서까래에 부연을 더한 겹처마로 구성했다. 맞배지붕의 형태를 하고 있기 때문에 공포는 정면과 배면으로만 구성하면 그만이지만, 산신각의 공포를 만드는데 있어 측면 및 45°방향으로도 살미를 구성한 것이 특징적이다.
내부는 배면을 따라 단을 만들고 그 위에 2폭의 탱화를 봉안했다. 왼쪽의 탱화는 독성탱화이며, 오른쪽의 탱화는 산신탱화이다. 산신탱화에 기록되어 있는 화기에 의하면 이 탱화는 1987년에 조성한 것이다.
산신각의 내부는 우물천장으로 천장을 구성했고, 바닥은 우물마루로 구성했다.
출처
전통사찰관광종합정보
용암사 마애불
통일신라시대의 불상
높이 3m.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7호. 화려한 연화대좌(蓮華臺座) 위에 서 있는 정면관(正面觀 : 앞에서 바라본 모습)의 여래입상이다. 전체적으로 균형 잡힌 비례와 유려한 옷주름 선 그리고 고부조(高浮彫 : 높은 돋을새김)에 의한 적절한 양감이 어우러진 수작이다. 불상의 얼굴은 갸름한 달걀형으로 정제된 상호(相好 : 부처의 몸에 갖추어진 훌륭한 용모와 형상)에서 정감이 넘치면서도 위엄 있는 불성(佛性)을 잘 반영하고 있다.
두부(頭部)에는 둥근 육계(肉髻 : 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가 큼직하다. 살이 많이 올라 풍만한 양 뺨에서는 사실적인 양감이 느껴진다. 반타원형의 눈은 길게 반개(半開)하였다. 눈초리가 살짝 위로 치켜 올라가 있다.
길게 내려 뻗은 코는 우뚝하고 꼭 다문 입술에는 붉은 채색을 입혔다. 커다란 귀가 어깨까지 닿고 있으며 짧은 목에는 삼도(三道)가 선명하다. 불상의 신체는 비교적 늘씬하고 탄력 있는 자태를 보여 주고 있다.
지면에서 다소 떨어져 암벽의 중간에 상을 새기고 있기 때문에 허공에 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목에서부터 곧바로 이어지는 어깨가 매우 굳세고 양발을 가볍게 벌려 발끝을 밖으로 향한 안정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착의 형태는 우견 편단(右肩偏袒 : 오른쪽 어깨가 드러남)이나 오른 어깨를 살짝 덮고 있다. 발끝의 군의(裙衣) 자락이 좌우로 날카롭게 뻗치고 있다. 왼 어깨를 감싸 흘러내린 옷자락이 오른 손목을 감아 유려하게 흘러내리고 있다. 복부 아래로도 완만한 U자형 옷주름이 몸 앞에서 겹겹으로 늘어지고 있다.
수인(手印)은 왼손을 내리뜨려 엄지를 제외한 나머지 네 손가락을 가볍게 구부린 모양을 하고 있다. 오른손은 가슴에서 들어 엄지와 중지 외 나머지 손가락을 살짝 쥐고 있는 시무외(施無畏)·여원인(與願印)을 결하고 있다.
대좌는 연판(蓮瓣 : 연꽃잎)의 조각이 정교하고도 화려하다. 광배(光背 : 회화나 조각에서 인물의 성스러움을 드러내기 위해서 머리나 등의 뒤에 광명을 표현한 둥근 빛)는 주형 거신광(舟形擧身光)이다. 마멸이 심하여 세부 판별이 쉽지 않다.
마애불상의 조성 연대는 조각 수법과 착의 형태 그리고 대좌의 형식 등으로 미루어 볼 때 통일신라 말기로 추정된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옥천 용암사 동ㆍ서 삼층석탑 (沃川 龍岩寺 東ㆍ西 三層石塔)
보물 1388호
이 석탑은 일반적인 가람배치와 달리 대웅전의 앞이 아니라 사방이 한 눈에 조망되는 북쪽 낮은 봉우리에 있다. 석탑이 사방의 조망권이 확보된 위치에 건립된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이르러 성행했던 산천비보(山川裨補)사상에 의해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산천비보사상이란, 탑이나 건물을 건립해 산천의 쇠퇴한 기운을 북돋아준다는 것이다.
같은 모양의 석탑 2기는 이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렸다. 자연암반 위에 건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층 기단을 갖추고 있으며, 동탑은 4.3m, 서탑은 4.1m로 규모면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서탑의 경우 2층과 3층 탑신의 몸돌이 결실되어 새로이 보충해 놓은 것이다.
각 부의 양식과 석재의 결구 수법에서 매우 간략화된 수법을 보이고 있는 이 탑은, 현재까지 확인된 산천비보사상에 의해 건립된 석탑 중 유일하게 쌍탑이라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높다.
비록 석탑 각 부의 양식과 석재의 결구 수법에서 간략화하는 현상이 보이고 서탑의 경우 2.3층 탑신석이 결실되어 신재(新材)로 보충하는 등 아쉬운 점이 있으나 이 석탑은 양식적인 면보다는 건립의 목적과 위치의 선정에 있어 특성을 지니고 있다.
첫째, 석탑의 건립 위치가 일반적인 사찰에서와 같이 대웅전의 전면이 아니라 사역(寺域)의 북쪽 낮은 봉우리에 있다. 석탑이 있는 지점에서 보면 북쪽으로는 옥천 시가지가, 남쪽으로는 용암사의 경내가 한 눈에 조망되는 입지를 지니고 있다.
이처럼 가람배치의 정형에서 벗어나 사방으로의 조망권이 확보되는 지점에서 석탑을 건립하는 것은 9세기에 건립된 경주 남산용장사곡삼층석탑(보물 제186호)에서 시작된 것으로서 이는 산천비보사상에 의해 건립된 것으로 이해된다.
통일신라시대 말기에 건립된 이 계통의 석탑은 고려시대에 이르러 안동 막곡동삼층석탑, 안동이천동삼층석탑, 영동영국사망탑봉삼층석탑, 홍천양덕원삼층석탑, 영암월출산용암사지삼층석탑, 안동대사동모전석탑, 산청법계사삼층석탑, 영양삼지동모전석탑, 증평남하리삼층석탑, 정선정암사수마노탑을 비롯하여 전국 도처에 이 같은 양식의 석탑을 건립하게 된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용암사쌍삼층석탑 역시 건립된 위치로 보아 고려시대에 이르러 성행했던 산천비보사상에 의해 건립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둘째, 고려시대에 건립된 산천비보사상에 의해 건립된 석탑은 모두 단탑(單塔)임에 비해 이 석탑은 쌍탑(雙塔)이라는 것으로서, 용암사쌍삼층석탑은 조사결과 정확히 동.서방향을 유지하고 있고, 양탑의 양식이 유사하고, 지대석 하면에 물려 있는 암반의 형상을 보아 이 탑은 본래의 위치를 지키고 있다는 점에서 본래부터 쌍탑의 의도로 건립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현재까지 확인된 산천비보사상에 의해 건립된 석탑 중에 쌍탑으로서는 처음 확인되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세째, 산천비보사상에 의해 건립된 석탑은 대체로 자연암반을 기단으로 삼은 까닭에 기단부가 생략되어 있으나 용암사쌍삼층석탑은 자연암반 위에 건립되었음을 불구하고 2층기단을 구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규모에 있어 다른 예가 보통 2∼3m의 높이를 지니고 있음에 비해 동탑은 4.3m, 서탑은 4.1m의 높이를 지니고 있다.
석탑은 사방의 조망권이 확보된 위치에 건립되어 고려시대에 이르러 성행했던 산천비보사상에 의해 건립된 것을 알 수 있으며, 현재까지 확인된 산천비보사상으로 건립된 석탑 중 쌍탑으로서는 처음 확보되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출처
문화재청
CNN 선정 한국에서 가봐야 할 아름다운 50선에는
5개의 사찰(경주 불국사,합천 해인사,여주 신륵사,부산 삼광사,옥천 용암사)이 있는데
대전 근교에 옥천 용암사가 있기에 가볍게 다녀가다.
용암사는 장용산 중턱에 있기에 산행과 연계하여 방문하면 좋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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