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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산책

영동 반야사 -KBS 영상앨범 산 촬영- "백화산 호국의 길과 주행봉-한성봉 산행"

by [대전]풀때기 2014.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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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 반야사 -KBS 영상앨범 산 촬영-

"백화산 호국의 길과 주행봉-한성봉 산행"

 

 

TV 방영 예정 날짜:2014.05.11(일) 오전 07시 40분

프로그램 명:KBS2 영상앨범 산

   

 

촬영 1일차 코스: 옥동서원 -> 백옥정 -> 밤나무골 -> 출렁다리 -> 인천석대 -> 문수전 -> 반야사

촬영 2일차 코스: 주행봉 등산로 -> 주행봉 -> 백화산 한성봉 -> 반야사

 

촬영 1일차 -> 백화산 호국의길 거리: 5.1km

촬영 2일차 -> 주행봉-백화산(한성봉) 산행

 

옥동서원 주소: 상주시 모동면 수봉리 546-0

반야사 주소: 영동군 황간면 우매리 151-1

 

 

촬영 날씨: 오전 맑음 / 오후 맑음

 

 

영상앨범 산 출연자: 가이드 역활 -> 김웅식

                            일반인 6명 -> 선생님과 제자들 6명

                            (5월 스승의날을 기념하여 선생님과 그 제자들이 산에서 우정을 쌓는 모습을 촬영)

 

촬영 협조: 풀때기

 

 

김웅식 약력: 2000년 에베레스트 산 8,848m 등정 성공 , 2001년 시샤팡마 산 8,027m 등정 성공 ,
                  2002년 칸첸중가 산 8,586m 등정 성공 , 2003년 브로드 피크 8,047m 등정 성공 , 5대륙 최고봉 등정 성공

                  2004년 체육훈장 거상장 수장       

  

 

 

영동 반야사

반야사는 영동의 백화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백화산은 포성봉(捕城峰)이라고도 불리는 산으로 충청북도의 영동과 경상북도의 상주의 경계가 되는 빼어난 절경의 산이다. 백화산(白華山)이란 이름은 ‘티 없이 맑고 밝은 산’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데 사시사철 그 풍경을 다양하게 변화하며 그때마다 찾는 이를 반갑게 맞아주고 있다. 봄에는 능선마다 꽃이 만발하고, 여름에는 푸르른 계곡의 물이 시원하며, 가을에는 단풍이 온 산하를 물들이고, 겨울에는 기암괴석이 몸을 드러내 그 웅건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백화산의 산봉우리 사이를 따라 석천이라는 개울이 흐르고 있다. 멀리 상주방면에서 발원해 백화산을 가로질러 구불구불 흐르는 개울이다.

구불구불 흐르는 석천의 모습이 마치 연꽃의 모양과 같으며 이 연꽃 모양으로 흐르는 개울의 한 중심에 넓은 공간이 만들어졌고, 이 포근한 대지에 반야사가 위치하고 있다. 반야사는 문수보살이 주석하고 계신 곳이다. 사찰의 명칭을 반야(般若)라고 한 것으로도 이곳이 문수도량임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반야사는 신라 성덕왕 19년 경신년(720년)에 창건되었다. 의상대사의 10대 제자 중 한 분이신 상원(相願, 相源)대덕이 창건한 이래 수많은 전설을 간직한 채 사찰의 역사가 진행되었다. 여러 전설 중 세종과 관계된 전설은 다시 한번 반야사가 문수보살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반야사 주차장

 

 

 

 

 

 

 

반야사 입구

 

 

 

 

 

 

 

반야사 문수전 조감도

 

 

 

 

 

 

 

반야사 산신령(호랑이) 그림

 

 

 

 

 

 

 

 

 

 

 

 

 

 

 

 

 

 

 

 

 

 

 

 

 

반야사 약수터

 

 

 

 

 

 

 

 

 

 

 

 

 

 

 

반야사 중앙

 

 

 

 

 

 

 

반야사 뒤로 산비탈의 너덜지대가 호랑이의 모습을 닮았다.

 

 

 

 

 

 

 

대웅전

 

반야사의 주불전으로 건립된 건물이다. 원래는 현재의 극락전을 반야사의 주불전 이자 대웅전으로 사용하였으나 1993년 현재의 대웅전을 새롭게 건립했으며, 원래의 대웅전은 극락전으로 사용하고 있다. 평면은 정면 3간, 측면 3간으로 구성했는데 정면의 협간에 비해 어간을 크게 간살이했다. 대웅전은 특별히 배면의 어간부분을 뒤로 물려 감실을 만들었는데 이곳에 불상을 모시기 위함이다. 자연석을 이용해 축대를 쌓고 이 상부에 정교하게 다듬은 화강암을 이용해 기단을 만들었다.

 

기단의 형태는 지대석, 기둥, 갑석의 모양이 묘사된 가구식기단의 형식을 채택했다. 자연석을 이용해 조성한 축대 좌우 상부에는 한 기씩의 석등을 건립해 놓았다. 대웅전에 오르는 계단은 건물의 중앙 전면에 만들었는데 기단과 마찬가지로 다듬은 돌을 이용해 만들었다. 초석 역시 다듬은 돌을 이용했는데 운두에는 화려한 연꽃의 모양이 조각되었다. 초석상부에 사용한 기둥은 원형기둥을 이용했다. 중간부와 하부의 폭에 비해 상부의 폭을 좁게 설정한 배흘림기둥이다.전면의 기둥에는 각각 주련을 걸어 놓았고,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天上天下無如佛(천상천하무여불) 천상천하에 부처님과 같은 분은 없고

十方世界亦無比(시방세계역무비) 시방세계에 비교될만한 분 역시 없다

世間所有我盡見(세간소유아진견) 세간에 있는 모든 것을 나 다 보았으나

一切無有如佛者(일체무유여불자) 부처님과 같은 분은 전혀 없더라

 

 

대웅전 내부

 

반야사 대웅전에 봉안된 불상은 3위로서 중앙에 석가여래좌상 우측은 보현보살 좌측은 문수보살이다.

 

석가여래좌상: 석가는 불교의 개조이며 여래는 진리의 세계에서 중생구제를 위해 왔다는 뜻으로 부처의 존칭이다.

보현보살:불타의 덕을 맡아보는 보살

문수보살:여래의 좌측에 있어 지혜를 맡은 보살

 

 

 

 

 

 

 

 

 

 

영동 반야사 삼층석탑

 

이 탑은 반야사의 경내에 건립되어 있는데, 원래 반야사 북쪽의 석천계곡 '탑벌'에 있던 것을 1950년에 지금의 자리로 이전한 것이라 한다.

지대석 위에 1층의 기단을 이루고 그 위에 3층의 탑신(몸돌)을 올린 석탑으로 높이는 335cm이다. 토단 위에 건립되어 있는데, 지대석으로부터 마지막 층까지 대체로 완전한 편이다.

지대석은 모두 6매의 판석으로 구성되었다. 지대석 윗면의 네 모서리에는 합각선이 돌출되어 있으며, 중심부는 깊이 3cm정도의 홈을 파 기단면석이 꼽히도록 하였다.

기단부는 모두 4매의 석재로 구성되었는데, 각 면에는 양 우주와 탱주가 모각되었다. 갑석의 윗면은 1매의 판석으로 조성하였는데, 중앙에는 깊이 3cm정도의 홈을 파 초층탑신을 꼽도록 조성했다. 갑석의 네 모퉁이에도 합각선이 돌출되어 있다.

1층 탑신은 4매의 판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면에는 양 우주를 새겼는데, 남·북쪽 면석은 새로 끼워 넣은 것이다. 2·3층 탑신은 모두 1석으로 조성되었는데, 2층 탑신에 모각된 우주에서는 엔타시스 수법을 볼 수 있다. 3층 탑신은 현상으로 보아 새로 끼운 것으로 판단된다.

옥개석은 1층에서 3층까지 모두 1석으로 조성되어 있다. 각층 옥개석의 낙수면은 길이가 짧고 경사가 급한 편이며, 옥개석 받침은 1층 5단, 2·3층에서는 4단으로 되어 있다. 추녀는 비교적 두껍게 조성되었는데, 직선화되는 보편적인 수법과는 달리 둥글게 표현되어 전각의 반전은 예리한 편이다. 옥개석의 윗면에는 낮은 각형 1단의 받침을 조출해 탑신을 받고 있다. 정상에는 찰주공이 관통된 노반과 복발이 남아있다.

이 석탑은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 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초층탑신의 결구수법은 신라 석탑의 전통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으며, 기단면석과 초층탑신을 꼽도록 하면에 홈을 판 점은 충청도와 전라도 일원에 건립된 백제계 석탑의 양식이라 할 수 있다.

영동 반야사 삼층석탑은 비록 일부 새로운 부재가 보충되었지만, 양식적인 면에서 백제계와 신라계 석탑의 양식을 절충해 건립된 고려시대 석탑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어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출처

위키백과

 

 

 

 

 

 

 

 

 

 

 

 

 

 

 

 

 

반야사 범종각

 

대웅전, 극락전이 위치한 주공간의 전면에는 넓은 마당이 조성되어있다. 이 마당 한쪽 켠에는 스님들의 거처공간인 요사가 따로 담장으로 구획되어 위치하고 있으며 이 요사공간 전면에 하나의 건물이 위치하고 있다. 이 건물이 범종각이다. 범종각은 사물을 걸고 소리를 내어 각각 온 세상의 모든 미물까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 건립하는 건물이다. 사물에는 범종, 북, 목어, 운판이 포함되는데 사찰의 형편에 따라 하나 혹은 둘의 사물만을 봉안하는 경우도 많다. 반야사의 범종각에는 범종과 운판이 걸려있다. 범종에 새겨진 명문에 의하면 범종은 2000년에 만들어진 것이며 범종각 역시 이 시기에 조성한 것이다.

 

범종각은 정면 1간, 측면 1간의 단간평면을 갖고 있다. 기단은 정교하게 다듬은 화강암을 이용해 만들었고 기단 상부 사면에는 각각 화강암에 의한 난간을 만들었다. 초석도 다듬은돌 초석을 사용했는데 원형초석이다. 기둥은 원형기둥을 이용했는데 강한 배흘림을 갖고 있다. 공포는 다포식의 공포를 얹었는데 출목은 외1출목으로 구성했으며 내부로는 출목을 형성하지 않았다. 주간에는 하나의 공간포만을 사용했으며 공간포 상부에는 하나의 보를 얹어 이로 범종을 지지하고 있다. 서까래 끝에는 부연을 얹었으며 지붕은 맞배지붕의 형태를 하고 있다.

 

 

배롱나무

 

수령 500년

 

 

 

 

 

 

 

 

 

 

 

 

 

 

 

 

 

 

 

 

 

 

 

 

 

 

 

 

 

반야사 극락전

 

대웅전 왼편에 대웅전에 비해 작은 불전이 위치하고 있는데 이 불전이 반야사의 극락전이다. 원래 반야사의 대웅전으로 건립된 건물이었으나, 1993년 현재의 대웅전을 새롭게 건립한 이후 극락전으로 이용하고 있다. 현재 반야사 경내에서 가장 오래된 불전이다. 평면은 정면 3간, 측면 2간으로 구성되었는데 어간을 협간에 비해 약간 크게 만들었다. 기단은 막돌을 이용해 낮게 한단만 쌓은 외벌대이며 초석 역시 막돌을 이용한 막돌초석이다. 막돌초석을 이용하면서도 그 운두를 매우 높게 설정한 특징을 보이고 있다. 기둥은 원기둥을 사용했는데 따로 흘림을 두지는 않았다. 전면의 각 기둥에는 주련을 걸었으며 내용은 다음과 같다.

 

阿彌陀佛在何方(아미타불재하방) 아미타불이 어느 곳에 계시는가

着得心頭切莫忘(착득심두절막망) 마음속에 깊이 새겨 간절히 잊지 말지어다

念到念窮無念處(염도념궁무념처) 생각이 이르고 생각이 다해 생각 없는 곳에 다다르면

六門常放紫金光(육문상방자금광) 육문이 항상 자색 금빛을 발하리라

 

기둥 상부에 사용된 공포는 익공식의 공포를 사용했다. 초익공의 기본 구조를 갖고 있으나 2단의 헛첨차를 기둥에 꽂아 사용했기 때문에 변형된 이익공이라 할 수 있다. 처마에는 부연을 달아 겹처마로 구성했고, 지붕은 맞배지붕 형태를 하고 있다. 박공면에는 풍판을 달아 비바람으로부터 벽체를 보호하고 있다. 극락전의 정면은 모두 창호를 달아 개방했고, 우측면에는 출입이 가능하도록 한 짝의 문을 달았다. 정면 창호의 경우 어간과 좌측협간의 창호는 빗살창호를 사용한 반면, 우측협간의 창호는 정자살창호를 사용했다. 그 외 다른 부분은 모두 벽체로 구성했는데 외벽에는 심우도를 벽화로 그려 놓았다. 극락전 내부 중앙에는 불단을 만들고 이곳에 3기의 불상을 봉안했다.

 

중앙에 봉안된 불상은 아미타불이며 좌측의 불상은 지장보살, 우측의 불상은 관세음보살이다. 중앙의 아미타불이 좌상으로 만들어진 반면 지장보살과 관세음보살은 입상의 형태를 하고 있다. 불상의 뒤편으로는 후불탱화가 걸려있으며, 불단의 좌우측에도 각각 하나의 탱화가 걸려있다. 좌측의 탱화는 지장탱화이며, 우측의 탱화는 관세음보살도이다. 두 탱화 모두 불기 2530년 즉 1986년에 제작된 것이다. 극락전 내부 좌우측 벽면에도 단이 조성되어 있다. 좌측 벽면에는 칠성단이 만들어졌고 그 상부에는 칠성탱화가 봉안되었으며 우측 벽면에는 신중단이 조성되었고 상부에는 신중탱화가 봉안되었다. 이 두 탱화 역시 모두 1986년에 제작된 것이다.

 

 

 

산신각

 

대웅전과 극락전이 이루는 주공간 뒤편 언덕위에 작은 건물이 위치하고 있는데 이 건물이 반야사의 산신각이다. 산신각은 산신을 모시고 있는 건물이다. 산신은 불교의 전래 당시부터 불교에 포함되어 있던 분이 아니었다. 불교가 우리 민족과 더불어 발전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포함하게된 한국불교만의 독특한 신앙이다. 산신각이 위치하고 있는 부분에 자연석을 이용해 높은 축대를 쌓은 후 이 위에 산신각을 건립했고, 오른편으로 이곳까지 오를 수 있도록 많은 단의 계단을 쌓았다. 다른 사찰과 마찬가지로 산신각은 단간의 작은 규모로 건립되었으며 그 구성이 매우 소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반야사의 산신각은 막돌로 높게 쌓은 축대위에 콘크리트에 의한 기단을 만들었다. 콘크리트로 만든 기단 내부에 따로 초석을 사용했는지 명확하지 않으나 현재는 기단 상부에 목조 기둥을 얹은 모습이다.

 

기둥은 원기둥을 사용했고 기둥 상부에는 따로 공포를 구성하지 않은 민도리집이다. 서까래 상부에는 따로 부연을 달지 않았고, 지붕은 모임지붕으로 만들었다. 모임지붕의 지붕 꼭대기에는 절병통을 얹어 마감했다. 산신각의 정면은 외부로 개방할 수 있도록 창호를 달았는데 일반적인 여닫지 형태가 아니라 미닫이 형태로 만든 것이 특징적이다. 산신각의 출입은 산신각 우측면에 만들어진 문을 통해 이루어지도록 했다. 산신각 내부 배면에는 단을 조성하고 이 위에 산신의 상을 봉안했다. 호랑이 위에 올라타고 있는 일반적인 산신의 모습이다. 산신상 뒤쪽으로는 산신탱화를 걸었는데 화기에 의하면 불기 2533년 즉 1989년에 조성한 것이다.

 

 

산신각 내부

 

 

 

 

 

 

 

산신각 벽화

 

 

 

 

 

 

 

대웅전에서 바라본 백화산(한성봉)

 

 

 

 

 

 

 

 

 

 

 

 

 

 

 

반야사 사무실

 

 

 

 

 

 

 

 

 

 

 

 

 

 

 

 

 

 

 

 

 

 

 

 

 

 

 

 

 

 

 

반야사 부도

 

절 남쪽 50m 쯤에는 부도 2기가 전하는데 이 부도는 영동군 향토유적 10호와 11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는 부도이다. 부도에 어떤 명문도 보이지 않아 어느 분을 봉안한 부도인지 명확하지 않다. 2기의 부도 모두 석종형의 부도이며 이런 석종형의 부도는 조선시대에 크게 유행한 부도형식이다. 그 중 하나는 탑신 위에 원반 모양의 옥개석을 놓고 그 위에 원통형 석재를 올린 것으로 형태가 독특하다.

 

 

 

 

 

 

 

 

 

 

 

 

 

 

 

 

 

 

 

 

 

 

 

 

 

 

 

문수전 아래 계곡에서 세종대왕이 목욕을 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

 

 

 

 

 

 

 

 

 

 

 

 

 

 

 

문수전

 

이 절벽 꼭대기에는 문수전이 마련되어 있다. 이곳은 망경대(望景臺)라고 불리는 곳이다. 반야사의 스님이 어느 날 아침 해가 오를 무렵 우연히 이곳에 왔는데 마침 앞 못에서 문수동자가 목욕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못은 용소(龍沼)라고 불리며 아주 깊은 곳이기 때문에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곳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문수동자는 목욕을 하고 나서 그 옆에 솟아있는 절벽위에 별안간 올라앉아 멀리 사방을 바라보고 아침 해돋이를 예배했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이후 이곳을 망경대라고 불렀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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