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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천왕봉 표지석 변천사

by [대전]풀때기 2011.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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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천왕봉 표지석 변천사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달라진다." 는 지리산

 

지리산 천왕봉에는 약1천년 전부터 '성모사'라는 사당이 자리를 지켜왔으며,

그안에는 성모석상이 봉안되어있었다.

또한 천왕봉에서 정면으로 바라다 보이는 노고단에는 남악사가있으니

지리산은 금강산, 한라산과함께 삼신산(三神山)의 하나로 숭상된

영원한 우리민족의 산이다.

 

최고봉인 천왕봉(1915m)에서 능선을 따라 서쪽으로 이동하면

제석봉(1806m), 연하봉(1730m), 촛대봉(1703m), 영신봉(1651m),

칠선봉(1576m), 덕평봉(1522m), 명선봉(1586m), 토끼봉(1534m),

반야봉(1732m), 노고단(1507m), 만복대(1433m), 고리봉(1304m),

바래봉(1165m)이 있으며

 

천왕봉의 동쪽에는

중봉(1875m), 하봉(1781m), 써리봉(1640m), 웅석봉(1099m)이 있다.

 

이 가운데 천왕봉에서 노고단사이의 산행을 종주산행이라 말하며,

동쪽 끝의 웅석봉에서 서쪽 끝의 바래봉까지의 산행을

지리산 태극종주 산행이라 부른다.

 

 

 

 

1960년대

 

 

 

 

지리산 상봉 산 소옥(小屋)

천왕봉 아래 소옥(小屋)이 그럴듯 하다.

 

 

 

 

1965년6월

60년대만 해도 천왕봉 정상에는 흙이 많았나 보다.

곡꽹이로 파는걸 보아서는...

우리네 인간들이 하도 많이 밟아서 이제는 흙 한톨 볼 수 없다

 

 

 

 

아마도 81년까지 지리산 천왕봉을 지킨 표지석이다.

앞면에는 천왕봉 표지 글과

후면에는

남명 조 식(南冥 曺 植 1501~1572)선생의 詩가 새겨져 있다.

萬古天王峰(만고천왕봉)  天鳴猶不鳴(천명유불명)...

천왕봉은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는다...

 

請看千石鐘 非大扣無聲 

(청간천석종 비대구무성)

爭似頭流山 天鳴猶不鳴

(쟁사두류산 천명유불명)

 

천석들이 종을 보게나.

크게 치지 않으면 소리 없다네

어떻게 하면 두류산처럼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을 수 있을까

 

천석종(千石鍾)은 남명이 지향하는 이상적인 선비이고 또 남명 자신이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누구나 쳐도 소리내고 싶어 안달하는 조그만 종이 아니라

워낙 큰 그릇이기 때문에 크게 치지 않으면 소리가 없다.

하잖은 부귀영달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오직 국가 대사를 좌우할만한 요청에만 응한다는 말이다.

 

벼슬할만한 때가 아니라고 판단되면 아무리 불러도 나가지 않지만,

벼슬할 만한 때에 포부를 펼치기 위하여

국가와 백성에게 이익을 끼칠 수 있는 학문을 계속 쌓아

위대한 공적을 끼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때가 되면 ‘한번의 울림’으로

온 세상을 깨우칠 수 있는 있기를 바랐다.

 

지리산은 세월이 흐르고 계절이 바뀌어도 변함이 없고,

천재지변이 일어나고 왕조가 바뀌어도 변함이 없다.

어떻게 하면 저 지리산처럼

하늘이 울 정도의 큰 변란에도 미동도 하지 않는

그런 지조를 갖출까하는 것이 남명의 염원이었다.

 

지금 지리산 천왕봉에는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시작되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1982년까지는 남명이 지은 시 중

'만고의 천왕봉은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는다'는 뜻의

만고천왕봉 천명유불명(萬古天王峰 天鳴猶不鳴)이란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측면에는 지리산 일명 두류산(頭流山) 방장산(方丈山) 이라 써 있다.

 

 

 

 

 

70년대 말쯤엔 한자로 쓴 천왕봉 표지석에

천(天)자의 위쪽이 마모되어 대왕봉(大王峰)이라고 되었던

어처구니 없던 사연도 있었다.

 

 

 

 

이 천왕봉 표지석은 1982년 5공 실세였던 함양 산청 국회의원이었던

권익현씨가 세웠다.

아마도 처음에는 영남인의 기상,,,, 으로 만든것 같다.

아래사진의 慶자 부위가 훼손된걸로 보아서..

 

 

 

 

시련을 많이 겪은 표지석이다.

영남에서 경남으로 경남에서 또 한국으로...

 

 

 

 

현재의 표지석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담고

굳굳하게 지켜오고있는 천왕봉 정상석

 

1년에 150여 명 밖에 오르지 못했다던 당시,

산을 사랑한 사람들의 모습,

민족의 영산인 지리산에 '경남인의 기상...'이라고 새긴 권력자들의 횡포,

그런 횡포에 맞서 '경남인'을 정으로 쪼아버리고 '한국인'이라고 새기는 산사나이

지리산을 우리들의 산으로 영원히 보존하고

통일이 되어서 백두산 정상에 "한국인의 기상 이곳에서 발원되다."라는

정상석이 세워지길 간절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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