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용 밧줄을 잡지 않은 이유
1982년 4월 히말라야의 닐기리 중앙봉 정상에 태극기를 꽂은 한국 등반대는 장비 부족과
대원 한 명의 부상으로 하산을 할 수가 없었다.
고심 끝에 안창렬 대장은 산 정상의 3분의 1지점인 제 3 캠프에 부상당한 김광 대원과
그를 돌봐 줄 심상돈 씨를 남겨 놓고 하산했다.
그 다음 날 다시 올라와서 이들을 데려간다는 약속을 남겨둔 채.
그러나 다음 날 베이스캠프로 내려 간 등반대는 심상돈 씨에게
"직접 나서서 구조할 만큼 체력을 회복한 사람이 없음"이라는 무선 회신과
구조 헬기가 뜰 것이라는 소식을 알려왔다.
두 사람은 체력을 아끼기 위해 꽁꽁 얼어붙은 텐트 안에서 움직이지 않고 이틀을 보냈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다 못한 이들은 환청과 환각에 시달렸다.
고립 육일 째, 헬기가 도착했으나 워낙 지대가 높고 산소가 부족한 지역이라 착륙도,
로프 구조도 불가능하다는 말만 남기고 돌아갔다.
고립 팔일 째에 심상돈씨는 벌떡 일어났다.
직접 산을 내려가기로 결심한 그는 비닐로 썰매를 만들어 김광씨를 앉히고 끌면서 걸어 내려갔다.
그러나 심상돈씨 앞에는 건널 수 없는 크레바스 지대가 나타났다.
눈 앞이 캄캄했다.
부상자 썰매는 고사하고 혼자 내려갈 수도 없는 길이었다.
하룻밤을 지낸 그가 길을 찾고 있는데 마침 구조하러 올라오던 네팔 구조대를 기적적으로 만났다.
구조대는 심상돈씨에게 밧줄을 던졌다.
녹아 벌어진 크레바스 사이를 밧줄로 잡고 건너 내려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심상돈씨는 밧줄을 잡지 않았다.
그가 구조되어 건너가면 부상당한 동료를 그냥 둔 채 내려가자고 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히말라야 등반에서는 '모두 죽느니 한 사람이라도 살아야 한다.'는 것이 누구도
비정하게 생각하지 않는 철칙이나 마찬가지이다.
구조대는 소리쳤다.
그러나 심상돈씨는 끝까지 밧줄을 잡지 않았다.
결국 네팔인들이 조심스럽게 산을 올라왔고, 천신만고 끝에 두 사람은 구조되었다.
'등산장비,정보 > 등산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악회 활동 구성원들의 등산문화의식 (0) | 2011.01.28 |
---|---|
국립공원관리공단측에서 대피소 이름을 고집하는 이유는? (0) | 2011.01.28 |
산악인(山岳人)들은 왜 산으로 갈까? (0) | 2011.01.26 |
무모한 등정과 쓰레기투기로 전 세계 욕먹는 등산-코레안 (0) | 2011.01.26 |
야간산행은 왜 건강에 좋은가... (0) | 2011.01.2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