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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장비,정보/등산칼럼

희귀한 옛날 계룡산 사진

by [대전]풀때기 2011.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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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 비경 사진과 희귀한 옛날 계룡산 사진입니다.

 

 

 1980년대 중반 계룡산 안내도

 

 1984년도 계룡산 국립공원 입장권 영수증

 

 1984년도 입장권 영수증

뒷면에는 지도가 그려져 있고 크기는 지금 영수증의 4배 가량 큽니다.

 

 1985년도 관람권 영수증

 

 1986년도 관람권 영수증

 

허걱!~~~  어린이 50원, 어른 150원이군요 

2009년도 관람요금의 1/10도 채 안되는 군요

(현재는 국립공원 입장료는 없어지고, 문화재 관람료만 납부해도 어른 2,000원)

 

 

 1988년도 입장권 영수증

 

 

 

 

 

1989년도 입장권 영수증

 

 

 1990년도 입장권 영수증

 

계룡산 최고봉 천황봉의 천단입니다. 

 

2003년도 천황봉을 정비하며 충남도지사가 세운 천단유래비 

 

1949년 동학의 지파인 천진교에서 세운 천황봉 정상 산제단

 

쌀개봉 정상 아래 동편에 위치한 우비암(牛鼻岩:쇠코바위), 통천문(通天門)

이라고도 합니다. 

 

 1990년대 초반 동학사 홍살문

이때만 해도 일주문은 없었고 동계사와 숙모전이 있어, 특이하게도 사찰입구에 홍살문이 서있습니다.

 

지금도 여전한 동학사 현판

창암 이삼환(蒼巖 李三喚)이 쓴 글씨입니다.

창암은 조선후기 전북 완산 사람으로, 글씨 공부가 도가 지나처 서광(書狂)이라는 별명까지 얻게

된 사람입니다. 그는 병중일지라도 하루 천자의 글씨를 썼으며 큰 벼루 세개를 먹으로 갈아서

구멍을 뚫지 않으면 쉬지 않겠다고 글씨 공부에 정진했다고 합니다.

해서,행초서를 잘 썼으며, 그의 글씨체를 행운유수체(行雲流水體)라고 부릅니다. 

 

1990년대 초반 동학사

대웅전의 모습은 여전하건만 삼층석탑은 자리를 옮겼습니다.

 

 2009년 가을 동학사 대웅전, 오른쪽의 나무가 더 자랐군요.

 

 1990년대 초반 육화당

대중스님들이 참선,발우공양 하는 큰방입니다.

지금은 조국통일기도도량과 동학승가대학이라는 편액은 안보이고,

기둥마다 주련을 달아놓았습니다.

 

 남매탑 전설 상상도 옛날 그림

 

교체된 남매탑 안내판

등장인물의 복식이나 머리모양은 예전 그림이 시기적으로 더 어울립니다.

삼국시대에서 갑자기 조선시대로 변경된 듯 합니다.

 

 

 

신도안은 종교백화점이라고 할 정도로, 삼군본부가 자리하기 전에 수많은 종교 단체들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흔적밖에 없지만 다행히도 예전 사진이 몇장 있어 소개드립니다.

 

 백암동 골짜기 중턱에 위치했던 청학사터

 

암용추 계곡 입구 인근에 자리했던 용화사터

용화사는 계룡산 5대사찰으로 불릴 정도로 고찰이었으나, 지금은 잡초만 무성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용화사터에 남아있는 파손된 석조미륵불입상

 

1980년대 중반 용화사 석조 미륵불 입상

 

 

용화사는 현재 서구 가수원동으로 이전했습니다.

신도안 절터에서 옮겨온 석탑입니다.

 

 

 25년전에 처음 보고 신기했던 전라우도 금산군

중악단 뒷면에 낙서한 글씨인데 지금도 건재합니다.

지금은 충청남도 금산군....

두마면 용동리 작산 단군전 앞에 있던 하마비(下馬碑)

 

지금은 계룡대 입구 무궁화 동산에 있습니다.

 

1980년대 중반 단묘(檀廟)  전경

 

현재는 정림동으로 이전한 단묘

1984년도 단묘 조선시조(檀廟 朝鮮 始祖) 비석

 

현재 정림동의 단묘 조선시조 비석

 

1984년도 단묘내 단정(檀井)

 

최근 정림동의 단정 비석

 

1984년의 단묘 건물

 

 

최근의 단묘 건물, 건물을 그대로 이전해 왔습니다.

편액을 정림장으로 달았습니다.

 

1980년대 중반 신도안 삼신당 (三神堂) 

 

 비슷한 위치에서 촬영한 삼신당 산신전(위 흑백사진의 오른쪽 사진과 비교해 보세요)

삼신당은 620사업(신도안주민 이주사업)에도 철거되지 않고,

신도안 성도봉(成道峰) 아래 만복암(萬福岩)에 지금도 위치하고 있습니다.

 

위 흑백사진의 가운데 사진과 비교해 보세요

삼신당 쪽문입니다. 

 

현재 삼신당 모습

서구 장안동 장태산 휴양림 입구 바로 앞 오른쪽편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계룡산 구석구석 명소도 많고, 각자도 많고, 비경도 많습니다.

 

연천봉 정상의 강선대(降仙臺)

 

 

연천봉 정상 바위에 새겨진 참구 방백마각 구혹화생, 그리고 나무염불(南無念佛)

 

방백마각 구혹화생(方白馬角 口或禾生)

방(方)은 네모나다는 의미이므로 동서남북 네군데, 네 모서리인 넉사를 뜻합니다

백(白)은 일백백자를 표현합니다.

마각(馬角)은 말은 뿔이 없으므로 말과 친숙한 가축이 소이고, 소는 뿔이 두개 있으므로

소우자(牛)를 파자하면 팔과 십자되고,  뿔은 두개이므로 두이자(二)가 됩니다.

정리하면 사백팔십이(482)라는 풀이가 됩니다.

 

구혹(口或)은 합쳐보면 나라국(國)자가 되고,

화생(禾生)은 합쳐보면 옮길 이자(移)의 옛글자가 됩니다.

역시 정리하면 국이()가 됩니다.

그렇다면 482년 나라가 옮긴다는 말입니다.

 

1392년 조선건국 1910년 경술국치이므로 조선이라는 나라는 518년을 버텼습니다.

그럼 수치상으로 32년을 더 지속했다는 것인데,

혹자는 연천봉에 압정사(현 등운암)을 세워 정씨(정도령)의 기운을 눌러서 연장되었다고도

해석하고, 또 혹자는 명성황후가 중악단에서 계룡산 산신에게 정성을 다해 기도해서 연장이

되었다고도 합니다.

여하튼 방백마각 구혹화생은 조선이 482년만에 망한다는 암호입니다.

 

 

일부 선생이 공부했던 거북바위

향적봉 오르는 길 좌측에 있습니다. 

 

신원사 사방댐 아래 은암 

 

은암에서 300미터 위쪽에 새겨진 신원사 계곡 주계 

 

오송대 계곡 입구에 새겨진

황우

만국활계남조선 문명개화삼천리

황우여정희장수 도술운통구만리 

영도 박첨제

 

국사봉 정상에 세워진 오행비와 천지창운비

오행비에는 오,화,취,일 네글자가 동서남북방향에

천지창운비에는 불,천계황지,남두육성.북두칠성 글자가 동서남북방향에 새겨져 있습니다.

현재는 울타리를 둘러놓았습니다.

 

국사봉 아래 4층 돌탑 바위

마치 쌓아놓은 것 처럼 보이지만

반대편에서 보면 모두 붙어 있는 바위입니다.

 

갑사계곡의 새겨진

천장소회어상

아문화성우화 

 

숫용추계곡에 새겨진 동심계(同心契) 명단 

 

숫용이 빠져나왔다는 숫용추

 

숫용추를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 

 

암용이 빠져나왔다는 암용추 

 

암용추 아래 

 

상도리 용화사(용동리 작산 용화사와 명칭은 같으나 다른 절입니다.) 위편 등산로 왼쪽에

위치한 마애불

불두는 따로 제작해 붙였습니다. 

 

상도리 용화사 마애불 우측에 그려진 보살

 

신도안이 도읍이 되면 서문이 들어설 자리인 서문다리 

 

서문다리 안에서 올려다 본 모습 

 

서문다리를 통과해 천황봉으로 나아가면 바로 만나는 범바위 

 

 

 범바위를 지나 천황봉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면 만나는 큰바위 얼굴

 

상신계곡 곳곳에 새겨진 용산구곡

용산구곡

 

 1곡 심용문

 

 2곡 은용담

 

 3곡 와룡강

 

 4곡 유용대

 

 5곡 황용암

 

 6곡 견룡소

 

 7곡 운용택

 

 8곡 비룡추

 

 9곡 신룡연

 

자양산월동원만천

백록담파영방사해

 

 궁산을수.......S라인

 

 태극암

 

 호서 제산 일수

 

 명월(  )(  )보감한

여러번 고민해 봤는데, 빈칸에 알맞는 말은

명월만천보감한(明月萬川寶鑒)

(밝은달이 모든 개울에 비치니 보석거울을 닫는다)

또는 명월조곡보감한(明月照谷寶鑒)

(밝은 달이 계곡에 비치니 보석거울을 닫는다)가 어울릴 듯 합니다.

 

동학사 입구 세진정 아래

황산정

 

 동학사에서 남매탑 가는 길 오른쪽에 새겨진 사군대(使君臺)

 

 사군대 가기 전에 계곡 왼쪽에 새겨진 (*)(*)이형곤래유(李衡坤來遊)

 이형곤이라는 사람이 와서 놀고 갔다네요~

 앞의 두자는 지워졌습니다.

 

 제석사 각왕전

계룡산에 제석사?

신도안 용동리 암용추 계곡 왼편 중턱 제자봉 아래에 자리한 사찰입니다.

 

일주문에도 계룡산 제석사라고 써있으니 계룡산에 있는 것이 확실하겠죠?

620사업에도 불구하고 신도안에 남아있는 유일한 사찰입니다.

최근 중창을 해서 절 곳곳을 단장했습니다.

 

갑사구곡

 

 1곡 용유소

 

2곡 이일천

 

 

 3곡 백룡강

 

4곡 달문택 

 

 5곡 금계암

 

6곡 명월담

 

 7곡 계명암

 

 8곡 용문폭

 

 9곡 수정봉

 

갑사 5곡 근처에 있는 군자대 

 

갑사 4곡과 5곡 사이에 있는 인의석(仁義石)

 

주역(周易) 설괘전(設卦傳) 2장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입천지도왈음여양 (立天之道曰陰與陽)

입지지도왈유여강 (立地之道曰柔與剛)

입인지도왈인여의 (立人之道曰仁與義)

 

천명을 따른다는 것은 하늘과 하나가 되는 것이오, 만물과 하나가 되는 것이며,

천지자연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과 사람이 모두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일단 하늘의 도와 땅의 도,

그리고 인간의 도를 알아야 하며, 나아가 그것이 궁극적으로 하나로 조화되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늘의 도를 음양(陰陽), 땅의 도를 유강(柔剛), 인간의 도를 인의(仁義)라고 합니다.

인의석에 새겨진 행인도 달천하(行人道 達天下)

 사람의 도를 행하면 하늘과 땅과 더불어 하나가 된다.

그 사람의 도는 인의(仁義)이라라는 뜻으로 새겨 놓은 것 같습니다.

 

 

신원사 계곡은 은암 주계 

갑사 계곡은 은계

 

동학사 탐방안내소 지나자 마자 우측 상단에 새겨진

10대 공주군수 김갑순 불망비 (재임기간 1906년도)

한때 대전땅의 1/3이 김갑순 소유 부동산이었다고 합니다.

"민나도로보데스"

 

 

암용추 계곡지나 능선 중간에 세워져 있는 애국지사 이순화 묘

 

1988년도 마안봉

마안봉에는 말머리 바위(마두암)가 있습니다. 

 

 1984년도 신도안 석계리에 위치했던 천진전

 

1984년도 신도안 부남리의 정토사

620사업으로 서구 매노동으로 이전하였으나 몇해전에 폐사되어 흔적이 없습니다.

 

신도안 석계리에 위치했던 삼일전(三一殿)

 

 

 역시 신도안 석계리에 있었던 법룡사(法龍寺)

 

 1984년(위 사진) 1988년(아래사진) 똑같은 위치에서 촬영한 용동리(작산저수지) 가는 길

지금은 도로가 포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984년도 사진에 보이는 전봇대는 삼신당까지 가는 전선일 것입니다.

(당시 삼신당에는 전기가 들어왔음)

1988년도에는 삼군본부를 건설중이어서 전봇대를 철거한 듯 합니다.

 

 

출처 http://blog.daum.net/skyoffall

지은이:가을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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